[정동칼럼] 정의당 대선 후보 결선에 부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2021. 10. 7.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명제는 1987년 대선에서 처음 ‘현실’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후 근 한 세대 동안 한국 진보 정치 운동의 중요한 진리 규범이 되었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민주당이나 ‘양김’ 같은 존재로 상징되는 보수적 자유주의부르주아 세력에게 노동자, 농민, 영세 자영업자, 빈민, 성소수자 등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독자 정당과 선거 전략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실현하겠다는 인식이자 의지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세월이 흘러 ‘민중’의 내포와 사회적 조건은 변했지만 이 명제의 요체는 다시 유효하다. 지난 문재인 정권 4년반 동안 반복 확인했듯 현 집권세력은 수도권의 기득권과 10% 상위 중산층(upper middle)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당파다. 그들은 극심한 다차원의 불평등과 세습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노동당 이래 성과를 내고 꾸준히 이어져왔으나 언제나 한계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 상황의 근본적·제도적 제약 때문이었다. 조직된 노동자와 진보정치 세력은 약하고, 선거는 (지금도 그렇듯) 승자독식의 싸움이 벌어져온 협소한 선택의 공간이다. 특히 대선은 한편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왜 진리인지를 선명하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인 동시에, 항상 그 구조적 딜레마를 드러내는 장이었다. 언제나 유권자 대중에게는 ‘차악’을 선택할 것이 강요된다.

그리고 진보좌파 진영의 분열도 문제였다. 이들은 가뜩이나 약한 힘을 분산시켜 보통의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분파주의를 마치 고유의 정치문화처럼 만들었다. 진보좌파 세력은 총선, 지방선거 같은 결정적인 공통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장에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극단적 민족주의를 제외하면 진보정당들의 반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등의 사상적 차이는 ‘현실’에서 유연한 연대로써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한계가 여전한 와중에, 정의당, 녹색당, 사회변혁당, 노동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미래당 등은 대선을 앞두고 움직이고 있다. 그중 비교적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정의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심상정 의원이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해서 이정미 전 의원과 결선 투표를 하게 되었다. 심상정은 정의당 경선 과정에선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쉽게 넘지 못했다. 심상정 개인은 여전히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아재’ 정치인들과 비교 불가능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지만, 지난 몇년간은 비판을 많이 받았고 당과 함께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심상정 자신은 평생 진보정치에 크게 기여했고 개인적으로도 영달했지만, 진보정당들도, 그 안팎의 진보 정치인들의 전도도 밝지 않다. 그래서 정의당 안에서부터 의미 있는 반란이 일어난 거 아닌가?

일단 환영할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의당 후보들과 진보정당들은 혁신과 비약을 시민과 노동자 대중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 명운을 걸고 대선에 임해서 최소한 두 가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첫째는 투쟁으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다. 대장동 문제로 드러난 부패 기득권 카르텔과 뒤엉킨 민주·국민의힘 양당에 투쟁하는 ‘반부패 반불로소득 시민동맹’을 결성하고 촛불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여의도나 좁아터진 그들만의 당사에 있지 말고 당장 광장의 농성장과 온라인에서 곽상도·장제원·조국 집안의 부패와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들과 만나기 바란다.

또 지리멸렬 사분오열된 진보정당 운동을 리뉴얼하기 위한 큰 그림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 5일 정의당, 기본소득당, 녹색당, 미래당 등 4개 정당의 대표들이 연 합동토론회는 중요해보인다. 또한 ‘노동자-민중 경선’을 통해 대선 단일후보를 세우자는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운동도 주목된다.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 체제와 양당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대선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 같은 아래부터의 노동자·시민의 운동과 진보정당이 결합이 아니라면, 이재명·윤석열들과 양당 정치에 실망하며 ‘제3의’ 정치세력을 키우고 싶은 수백만 시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나? 민주노총발 ‘노동자-민중 경선’이 완벽한 안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더 좋은 연합과 연대의 정치 방침을 노동자 대중과 시민사회에 내놓고 정의당을 위시한 정당들은 가장 열린 자세로 이를 토의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진보정치가 희망 없는 ‘기존 체제’의 부속물이나 잉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