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의 미학경영] '기술이 이끄는' 예술화 사회
예술과 미적 욕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시대에 따라 미적 기준과 예술의 목적은 변화했을지라도, 인간은 언제나 미를 생산하고 향유해 왔다.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으로 인해 예술은 대중화됐고, 사회 전 구성원이 예술화 사회를 맞아 예술적 인간이 되는 토양을 일궜다.
과거, 예술의 생산은 전문가 고유의 영역이었고 향유는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대체로 예술은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계층이 직업 예술가에게 후원과 의뢰를 하는 형태로 생산됐다. 값비싼 회화의 안료, 조각의 재료, 음악의 악기 등 예술 활동을 위한 도구는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예술 창작을 위한 교육, 도구, 기술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거쳐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누구나 쉽고 값싸게 예술 활동을 하고 창작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전국민이 예술가 될 수 있는 시대
가령 피아노 예를 보자. 19세기 석판인쇄술과 새로운 조립 라인 생산 기술은 피아노의 대량생산과 대중화를 이끌었다. 피아노는 산업혁명에 따라 개량됐고 귀족만이 즐기던 피아노를 중산층에서도 직접 소유하며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정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피아노 교습을 받을 수 있고, 실물 피아노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휴대폰에 간단한 앱만 설치하면 피아노를 연주하고 곡을 녹음할 수 있다.
미술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물감과 캔버스 없이도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고, 누구나 손에 지닌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 작품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살롱전에 채택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 공간에 게시해 전 세계인에게 전시할 수 있으며, 직간접적인 형태로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기술이 예술의 장벽을 허물고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연 것이다. 전 국민이 카메라를 매일 손에 쥐고 다니며 어디서든 사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예술사에 있어 예술 양식과 주제의 변화는 사조의 전환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에 담아 예술로 칭할 수 있는 대상은 당시의 시대상과 권력 관계에 따라 한정적이었다. 언스트 곰브리치(1909~2001)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회화의 주제는 제단화와 초상화로 고정돼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신을 숭배하기 위한 성화가 제작됐고, 르네상스에는 인간 중심의 시선과 인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음에도 말이다. 18세기 중반 이전에는 세속적인 성격의 그림들도 그리스 신화와 로마 영웅, 일반적인 진리에 대한 우의적 주제 등 몇 가지 주제에 국한돼 있었다.
대중이 곧 예술의 생산자·소비자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미술은 비로소 주제의 자유를 갖고 예술가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예술가들은 각기 다른 미술 사조를 결성하며 새로운 기법과 소재를 사용했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장면이나 거리의 부랑자도 예술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사랑을 받는 인상주의, 야수주의 등 새로운 사조를 시작하는 작가들은 당시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독특한 표현 기법과 소재들을 그리며 미술사에 큰 획을 남겼다.
그리고 정보시대, 누구나 예술의 창작자가 될 수 있게 되면서 주제의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찍어 편집하는 브이로그가 수백만 시청자가 향유하는 미디어 작품이 되는 세상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가 흐려지며,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일반 대중이 예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 그리고 예술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바로, 예술화 사회가 온 것이다.
예술화 사회의 생산과 소비는 그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예술화 사회의 소비자는 시장에서 만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감상과 자기 창작의 대상으로 경험하고 판단한다. 제품의 기능적, 미학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소비하면서 느껴지는 창작자의 철학과 가치관이 얼마나 그들을 공감하게 하며, 무엇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창조 본능이 실현되고 얼마나 멋진 감동을 경험하는지가 소비 선택의 기준이 된다.
예술화 사회의 생산은 이제 예산(藝産)이 돼야 한다. 예술화 사회의 까다로운 소비자를 열광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과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작품에 담듯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소비자로 하여금 “이 제품(서비스) 없었으면 어쩔 뻔…”이라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예술적 생산과 예술적 소비의 시대! 기술이 이끄는 예술화 사회가 왔다.
김효근 <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작곡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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