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40]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1. 10.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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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는 대통령이 아닌, 최고사령관이 군 통수권을 갖고 있다. 그러니 쿠데타가 안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다. 쿠데타는 우리나라도 겪었다. 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하면서 권력을 ‘양보’하는 듯한 파격을 보였다. 한국은행 출신의 김재익 경제수석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김재익은 수재인데 인복도 많았다. 하영기, 김건(훗날 한은 총재들) 등 서울대 문리대 선배들이 인사 규정을 고쳐가며 학업을 위한 그의 장기 휴직을 여러 번 눈감아 줬다. 박사 공부를 마칠 무렵 스탠퍼드 대학을 찾아온 남덕우(훗날 부총리)를 만났다. 남덕우는 자신에게 최신 경제 이론들을 쉽게 풀이하는 김재익을 눈여겨봤다가 장관 비서관으로 특채하고 경제수석으로 천거했다.

지난 1981년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김재익 경제수석(왼쪽)과 부인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 김재익 수석은 1983년 10월 9일 17명이 사망한 북한의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당시 당시 45세의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부인 이 명예교수는 서울대에 20억원을 기부해 남편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만들고, 개발도상국의 뜻있는 학생과 젊은 관료들이 서울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조선일보DB

김재익은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1960년대 말 농촌 민심을 달래기 위해 도입한 이중 곡가제가 경제를 망친다고 보았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쌀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팔면, 재정 적자만 심화되고 구조조정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김재익은 대통령에게 이중 곡가제 폐지와 쌀 시장 개방을 제안했다. 아주 민감한 문제였지만, 대통령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쌀 시장 개방에 이어서 과일과 쇠고기 수입도 늘렸다. 그러자 마침내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담당 장관이 대통령의 외국 순방도 따라가지 못한 채 농심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그날 김재익 경제수석 등 수행원과 취재진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장관 대신 출국한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도 포함되었다. 그 현장은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을 기리는 국립묘지였고, 그의 딸 아웅산 수지가 지금 시련을 겪고 있다.

아웅산과 쿠데타, 그리고 테러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38년 전 폭탄 테러의 슬픈 기억과 함께 착잡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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