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02] 스케일
라틴어인 스칼라(scala·‘사다리’라는 뜻)에 어원을 둔 ‘스케일’은 여러 곳에서 사용된다. 무게를 재는 저울을 뜻하기도 하고, 건축에서 실제 거리를 도면상에 축소하는 비율(또는 그를 위해서 사용하는 삼각형 측량 자)을 지칭하기도 한다. 음악에서는 음계(音階), 즉 음높이의 감을 잡기 위한 순서 구성, 또는 이 계획된 음에 따라 연주자가 연습하는 행위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케일이 크다” “자기 스케일대로 산다”는 표현처럼 보통은 일이나 계획의 크기, 또는 인물의 도량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친한 미국인 동료 교수 한 분은 한인 수퍼에 갈 때마다 뻥튀기를 산다. “난 이 과자 스케일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좋아하면서.... 이처럼 일상에서 익숙한 스케일이 크게 확대되었을 때는 신선한 경이로움이 있다. 똑같은 형태, 질감, 색채라도 스케일을 달리하면 다른 시각과 재미를 부여해 준다. 이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대표적 작가가 클라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다. 빨래집게, 지우개, 단추, 숟가락 등 우리 일상에서 친숙한 소재를 엄청나게 큰 스케일로 제작, 설치하여 공공 미술에 즐거움과 힘을 부여한다<사진>.
스케일의 정교한 변화가 적용되는 또 한 곳은 연극이나 영화 무대다. 연극에서 배우가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들고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보통 500원짜리 동전을 사용한다. 객석과 떨어진 거리 때문에 무대의 작은 소품은 실제 크기보다 축소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런 트릭은 종종 사용된다. 서부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집들은 실제 사이즈의 90% 정도 스케일로 만든다. 그러면 액션 장면에서 존 웨인(John Wayne)과 같은 주인공의 몸집이 상대적으로 크고 힘세 보인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이 디자인한 실내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꾸미고자 했던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 있다. 대형 조명 기구와 같은 그가 디자인한 오브제는 스케일의 연출로 특히 유명하다.
이런 경험을 하고 사물들을 보면서 가끔은 일상의 익숙한 스케일을 훨씬 벗어나는 생각을 해 보고, 일을 도모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각의 스케일이 커지면 그 안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가 깃든다. 우리는 마음의 스케일만큼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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