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수서 비리와 대장동 게이트

주춘렬 2021. 10. 6. 23: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경·관 유착 의혹' 판박이
화천대유 측 특혜·로비 정황
검경의 뒷북수사 불신 키워
토건비리 악순환 뿌리 뽑길

세계일보는 1991년 2월3일 자 1면에 ‘수서택지분양 특혜 정·경·관 유착 의혹’제하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 특종보도는 6공화국 최대 권력형 게이트인 ‘수서비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었다. 기사에는 청와대와 당시 야당인 평화민주당이 서울 강남구 수서지구 분양과 관련해 서울시에 협조공문을 보낸 사실이 담겼다. 한보그룹이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뿌려 무주택 서민에게 분양하기로 했던 수서지구를 특혜 공급받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은 닮은꼴이다. 이 사업은 1조1500억원을 들여 96만8890㎡ 부지에 5903가구를 건설한 것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민간 사업자가 2015년 7월 특수목적법인(성남의뜰)을 공동 설립해 진행했다. 시행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와 자회사 천화동인의 1∼7호 사주가 3억5000만원(지분 7%)을 출자해 배당금 4040억원과 분양이익 3000억원을 챙겼다. 수익은 잔여 사업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1조원대로 불어난다. 이 돈은 ‘민관 합작’이라는 미명하에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시민들에게 비싼 값에 떠넘겨 짜낸 것이다. 화천대유 측 인사들은 정관계와 법조계에 거액의 뇌물이나 보험용 로비자금을 뿌린 정황이 포착됐다. 이도 모자라 고가의 강남빌딩과 호화주택 등을 ‘쇼핑’했다니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오죽하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제2의 수서 사태와 맞먹는 정관계 로비 부패의 아수라장”이라고 했을까.
주춘렬 논설위원
민관 유착 추문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 주말 유동규 전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을 배임·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유 전 본부장은 화천대유에 개발이익을 몰아주도록 사업을 설계해 시민과 성남도공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화천대유 사주로부터 개발이익의 25%인 700억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올 1월 5억원을 챙겼다. 유 전 본부장은 여권 유력 대선후보 이재명 경기지사의 측근으로 꼽힌다. ‘이재명의 장비’, ‘넘버3’로 불릴 정도다. 그는 2010년 이 지사의 성남시장 선거를 도와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으로 발탁됐고, 이 지사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후 경기관광공사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 지사의 대응은 궁색하다. 지난달 중순 “단군 이래 최대 공익환수 사업”이라며 “이 설계는 제가 한 것이고 유 전 본부장이 실무자였다”고 했다. 유 본부장 구속 이후에는 “개발이익의 독식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며 “민간 사업자가 개발수익을 나눠 갖는 건 스스로 설계해야 할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민간 개발업자나 국민의힘을 ‘마귀’, ‘돼지’에 빗대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대통령 후보의 언행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법관과 전 검찰총장·특별검사·수원지검장, 피고인과 변호사, 언론인과 개발업자들이 공생관계를 맺은 의혹이 꼬리를 문다. 작년 7월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에 즈음해 화천대유 사주 김만배씨가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빈번하게 방문해 재판거래 논란이 불거진다. 김씨는 고문을 지낸 박영수 특검의 인척 사업가에게 100억원을 건넸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도 미덥지 않다. 뒤늦게 전담수사팀이 꾸려졌는데 요직에는 친정부 성향의 검사가 많다. 수사 기본인 자금추적과 압수수색도 더디다. 편향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피의자에게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30년 전 수서비리 수사 때 검찰은 정태수 회장과 여당·야당의원 등 9명을 구속했지만 외압 실체를 밝히지는 못했다. 진실은 2년 뒤에야 밝혀졌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했는데, 정 회장이 4차례에 걸쳐 150억원의 비자금을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은 대가로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 한보 측에 택지를 특별 공급하도록 했다. 대장동 수사도 꼬리 자르기에 그쳐 수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래서는 정권마다 터지는 토건 비리의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다.

주춘렬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