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요원 수십명 붙잡히고 처형 당했다… 美 CIA 최대 위기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1. 10. 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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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최근 전 세계 지부에 “현지 정보원 관리 비상” 전문 보내
“CIA 정보 능력 의심 받는 상황 반복”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자유·민주 진영을 지키는 막후(幕後) 수호신 역할을 자부했던 미 중앙정보국(CIA)이 안팎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CIA 조직의 핏줄과도 같은 해외 첩보망이 곳곳에서 붕괴되고, 현지 정보원 신원이 노출돼 검거·처형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세계 최고 정보 기관에 초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미 중앙정보국 CIA의 기관 로고. /CIA 홈페이지

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 행정부의 해외 정보 수집 및 특수 공작을 책임지는 CIA가 전 세계 지부에 극비 전문(電文)을 보냈다. 이 전문에는 최근 수 년간 해외 각국에서 미국 정부를 위해 정보원 역할을 했던 현지인 수십 명의 신원이 드러나 붙잡히거나 처형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해외 정보원이 발각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체를 들킨 일부 현지 정보원은 해외 첩보 기관에 설득돼 미 정보 당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거나 역(逆)정보를 흘리는 ‘이중 첩자’ 역할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경우 미국에 돌아오는 피해가 훨씬 컸다. CIA에서 요원 조직 관리를 맡았던 중국계 미국인 제리 춘 싱 리는 2018년 중국 정부에 기밀 정보를 넘긴 혐의로 19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7명의 희생자를 낸 CIA 기지 폭탄 테러의 경우 CIA가 포섭한 요르단 출신 의사가 자폭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CIA(중앙정보국)

CIA 통신망이 뚫리는 경우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CIA 전직 요원에 따르면 중국과 이란에선 CIA의 통신망이 뚫렸고, 이에 따라 신원이 드러난 현지 정보원 2명이 처형됐다.

CIA의 해외 첩보망이 잇따라 무너진 데에는 중국·러시아 등 적성 국가들의 생체 및 안면(顔面) 인식, AI(인공지능), 해킹 등 관련 기술 발전이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CIA 요원이 접촉하는 사람들까지 실시간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정보원의 정체가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 인식 기술과 감시 카메라, 휴대폰 GPS 추적 등으로 CIA가 쉽게 침범하기 어려운 감시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철수작전에 투입됐다가 극단주의무장단체 IS의 자폭 테러로 사망한 해군 장교 카림 그랜트 니코우이의 관이 성조기에 덮인채 운구되던 모습.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CIA의 정세 파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AFP 연합뉴스

CIA는 2차 대전 직후인 1947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출범된 이후 불법 도·감청, 외국 요인 암살 등 비밀 공작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74년 닉슨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진 ‘워터게이트 사건(불법 도청·사찰)’,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적성국 이란에 무기를 판 사건) 등 10년마다 CIA의 불법 행위가 노출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에선 빈 라덴 등 테러 용의자들을 추적하며 물 고문을 감행해 ‘인권 논란’도 제기됐다.

과거엔 CIA의 과도한 활동이 문제였다면, 최근엔 CIA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CIA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상대적 역량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실제로 CIA를 포함한 미 정보 당국은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과정에서 ‘정보 실패’를 노출해 도마에 올랐다. 미 정보 당국은 지난 6월 말까지 카불 함락 시점을 미군 완전 철수 후 18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카불 함락 불과 며칠 전까지도 백악관, 국방부 및 정보 기관 고위 관리들은 “이르면 한 달 이내 (카불의) 함락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막판까지 반군(叛軍) 및 아프간 정부군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해이 근무 미국 외교관들이 겪었던 이상 신체 증상인 아바나 신드롬을 설명한 인포그래픽. /AP 연합뉴스

CIA는 이번에 해외 지부에 보낸 극비 전문에서도 ◇과거 방식에 의존한 첩보 활동 ◇정보원에 대한 과도한 믿음 ◇외국 정보 기관에 대한 과소 평가 등을 조직 내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NYT는 “지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온 CIA가 이제 중·러 등 적성 국가들에 대한 첩보 활동을 주 임무로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CIA 정보원 관리 문제는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CIA 조직원들의 사기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세계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아바나 증후군’으로 CIA 요원들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안전도 책임질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아바나 증후군은 원인 모를 두통과 이명(耳鳴), 어지러움 등을 동반하는 증세로 유럽·중국·러시아·발칸 반도 등 해외 지부 곳곳의 요원들과 가족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CIA 등) 정보 당국 요원들이 가족들을 걱정해 해외 근무를 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정보 기관들은 이 공격에 러시아 첩보 조직인 정찰총국(GRU)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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