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 머물러 쉼, 한옥, 여행이 됨..불편하지 않다, 고즈넉하다 '한옥 스테이'
[경향신문]
구불구불 골목길 끝 작은 마당 품은 툇마루에 앉아 쉬다 빔프로젝트 내려 영화 보는 하루도
‘99칸’ 고택에서 고적한 새소리 듣고, 은은한 흙냄새 맡는 낭만도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하룻밤. 상상만으로도 모두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래도 한옥은 여행지 숙소로는 조금 낯설다.
한옥은 불편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숙박시설이라기보다는 둘러보는 ‘여행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금은 불편해도 전통 한옥에서 숙박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옥의 정취를 살리되 불편은 최소화해 ‘집’처럼 머무를 수 있는 한옥스테이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전국에 눈길을 끄는 다양한 규모의 한옥스테이가 있지만 여러 채의 한옥 중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곳을 골랐다. 보약 같은 수면을 불러들여 온전한 휴식을 보장할 수 있는 곳들이다. 독채로 사용 가능한 곳들도 있으니 거리 두기도 할 수 있다.
■도심 한옥에서의 편안한 하룻밤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하은재(下隱齋)’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숨겨진 한옥이다. 아담한 한옥들이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놓치기 쉽다.
‘은자의 거처’란 뜻의 하은재(29㎡)는 ‘영화와 쉼’을 추구한다. 작은 마당을 품고 있는 하은재는 ‘ㄱ’자 형태의 한옥이다. 퀸 사이즈 침대가 놓인 침실과 주방, 거실 등이 있다. 욕실은 2곳이 있지만 침실에 딸린 욕실은 침대 옆이 바로 문이라서 출입이 다소 불편하다. 하은재는 2인 기준 최대 4인까지 투숙이 가능하지만 1~2인이 쉬기에 적당한 공간이다. 주방에는 냉장고, 핸드드립 커피 도구, 토스터, 커피주전자, 식기 등이 있어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거실에는 스피커와 빔프로젝트, 스크린이 있다. 함께 놓여 있는 아이패드를 연결하면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볼 수 있다. 아마도 하은재에서 보내는 하루는 영화를 보거나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는 일쯤이 될 것이다.
하은재는 공간·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가 운영 중인 한옥형 숙소다. 스테이폴리오는 건축사 사무소 ‘지랩’이 2015년 만든 숙박 중개 사이트다.
코로나19 사태로 현재는 셀프체크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완료하면 체크인 당일 도어록 비밀번호를 e메일로 보내준다. 팬데믹 이전에는 동네 책방 ‘한권의 서점’이 안내소 구실을 했다. ‘한권의 서점’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동네 서점이기도 하지만, 한옥형 숙소의 운영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호텔 콘시어지(맛집, 카페, 상점 등의 정보 제공)’ 역할도 한다.
하은재 인근에는 출판사 디자인이음에서 운영하는 한옥카페 ‘베어카페’, 비건카페인 ‘채식주의자’가 있다. 길만 건너면 통인시장이라 먹을거리를 사와도 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내 집처럼 편하게 먹을 수도 된다. 골목이 비좁아 주차공간은 없으니 차량은 신교 공용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4시다. 동네 탐험 후 입실한 후에는 하은재의 공간을 최대한 누리는 게 남는 거다.
또 다른 한옥형 숙소인 ‘아담한옥’은 서촌 골목 안인 통인동에 있다. 아담한옥은 주방과 거실, 화장실이 있는 1층과 아늑한 침실이 있는 2층, 편백나무로 마감한 지하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은재에 비해 공간이 넓고, 침실이 2층에 있어 가족 단위 이용객에게도 적합한 공간이다.
1층에는 다기 세트가 준비돼 있다. 지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마당 한쪽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작은 노천탕이 있다. 통인시장과도 가까워 시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수성동 계곡 산책 등 서촌 일대를 돌아볼 수 있다. 귀찮다면 집 바로 앞에 커리식당 ‘공기식당’이 있으니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은 굳이 휴가를 내지 않아도, 퇴근 후 들러 1박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한옥에서 묵고 싶은데 고택에서의 숙박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전통 한옥을 고친 이런 숙소들을 찾으면 된다.
■99칸 고택에서의 특별한 하룻밤
경북 청송 심산골 덕천마을의 송소고택은 100년이 넘은 한옥이다. 청송 심씨 7대손인 송소 심호택이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오면서 지은 집으로 1880년쯤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0호로 지정됐다.
송소고택은 99칸 집이다. 조선시대 궁궐을 제외한 사가(私家)가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다. 충북 보은의 선병국가옥, 강원 강릉 선교장과 더불어 전국 3대 ‘99칸 고택’으로 꼽힌다. 칸은 건물 규모와 관련이 있다. 99칸이란 방의 개수가 아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뜻한다.
송소고택은 크게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와 별채로 구분되는데, 각각 독립된 마당과 우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송소고장(松韶古莊)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지붕이 담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문)을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건 ‘ㄱ’자형 헛담이다. 헛담은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안채에 드나드는 여자들이 사랑채에 기거하는 남자들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지은 간이 담장이다. 솟을대문 왼쪽에 있는 것이 큰사랑채다. 송소고택의 주인이 이곳에서 거처했다. 큰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것이 작은사랑채다. 작은사랑채 옆으로 난 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 오른편의 따로 담장으로 구획해놓은 별채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별채는 딸이 결혼 전까지 기거하며 예의범절을 배우던 공간이다.
송소고택은 2002년부터 고택 체험시설로 개방됐으며 현재는 위탁업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취사는 불가능하지만 마을 식당에서 아침식사는 가능하다.
송소고택에서 묵으면 온돌방과 한옥의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한옥의 특성상 방음 기능이 없으니 크게 떠드는 건 실례다. 책방, 누마루방, 행랑채 등 2인 5만~10만원, 큰사랑채, 안사랑방 등 4인 12만~20만원이다. 전기보일러 방도 있으니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지친 삶을 위로받고 싶은 어느 날, 고택으로 가보자. 탁 트인 대청마루에 누워 저녁을 맞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고적한 새소리를 듣고, 은은한 흙냄새를 맡다 보면 고택의 불편함은 하룻밤 사이 낭만으로 바뀔 것이다.
송소고택 바로 앞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심부자밥상’에서 아침식사가 가능하다. 마을이 심씨 집성촌인 만큼 예전 심부자의 밥상을 재현한다. 바로 옆 한옥카페 ‘백일홍’도 가볼 만하다.
■호사스러운 고택에서의 색다른 밤
전북 완주 소양면 대흥리 오성 한옥마을에 있는 ‘소양고택’은 호남 지역에 있던 130여년 된 고택 3채를 해체해 조성했다. 카페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한옥스테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선희와 아나운서 이금희가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ㄱ’자 형태의 한옥인 소쇄문(행랑채)과 사랑채, 안채, 가희당(독채), 별채(후연당)로 구성됐다. 총 8개의 객실은 호텔처럼 방마다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조식도 제공된다. 소양고택 안에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인 ‘두베(DUBE)’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촬영 장소로 이미 유명하다.
소양고택에서 운영하는 ‘플리커 책방’은 완주의 독립서점 1호다. 책 큐레이션도 눈에 띄지만 북토크, 오픈 플리마켓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소통의 장이다. 요즘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숙박객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날도 있다. 책방에서는 커피도 즐길 수 있다.
소양고택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아원(我園)고택이다. 2016년 11월 문을 연 아원은 방탄소년단(BTS)의 영상 촬영지로 알려졌다. 아원고택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의 한옥스테이 공간이다. 경남 진주에서 250년 된 고택을 이축했다. 한옥 3채와 현대식 건물 1채, 그리고 갤러리 ‘아원 뮤지엄’을 운영한다. 아원고택은 숙박객이 아니어도 입장료 1만원을 내면 구경하며 쉬어갈 수 있다.
소양고택과 아원고택 모두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워 언젠가 꼭 한번 묵고 싶은 곳이지만, 그만큼 숙박비도 비싸다.
고택 인근의 오성저수지 앞에 자리 잡은 ‘오스 갤러리’에도 가보자. ‘오스’라는 공간의 이름은 Our’s라는 뜻이다. 즉 ‘우리의 공간’,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 쉬어가면 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갤러리 입장은 무료다. 전시장 건너편에 카페도 운영하고 있으니 저수지를 보며 쉬어가기 좋다.
이명희 선임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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