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는 '일대일로' 파고드는 '더나은세계재건'
[경향신문]
중, 프로젝트의 35% 중단…라오스 등 참여국 ‘부채함정’에
바이든 정부, 중남미 인프라 투자 논의 등 영향력 확대 시동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더나은세계재건(B3W·Build Back Better World)’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중국의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이 대외원조 프로그램 시행을 본격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계획인 B3W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고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가 4일(현지시간) 분석했다. B3W를 추진할 백악관 고위관계자들은 지난달 27일부터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등 중남미 국가들을 방문해 각국에 필요한 인프라 요구사항을 듣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6월 주요 7개국(G7)에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계획으로 B3W를 제안했다. 2035년까지 미국을 주축으로 한 G7 국가들은 개발도상국 기반시설에 400억달러(약 47조원)를 투자하게 된다. 유라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그동안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애썼던 중남미 지역도 B3W 투자 대상국이다.
G7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B3W에 참여하는 것과 별개로 유럽연합(EU)도 일대일로에 대항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 사업 ‘글로벌 게이트웨이’ 계획을 내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연례 국정 연설에서 “세계 각국과 글로벌 게이트웨이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면서 EU가 세계의 인프라, 사람, 서비스 연결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브라질과 포르투갈을 잇는 수중 광섬유 케이블 사업, 녹색 수소시장 구축을 위한 아프리카 투자 등을 예로 들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글로벌 게이트웨이가 일대일로와 경쟁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분석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인도·태평양 지역이 EU의 번영과 안보에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권위주의 정권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2013년 중국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신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를 주창했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일대일로 초기 ‘차이나머니’를 반겼던 이탈리아와 동유럽 일부 국가들이 사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빚을 지고 특정 항구를 내주거나 사업권을 넘겨주는 일이 빈발했기 때문이다. EU 내에서는 중국의 부채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중국의 국제개발자금은 원조가 아닌 부채 형태로 조달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미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팀은 이들 지역에서 숨겨진 중국 부채가 3850억달러(약 456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라오스의 중국에 대한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부채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6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중저소득국을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르게 해 이들의 자산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사업 성과가 지나치게 부풀려졌거나 부패, 노동권 위반,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35%는 중단된 상태다.
포린폴리시는 “일대일로에 대항해 개발도상국 원조를 본격화하는 서구의 움직임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중국에 영혼 팔기를 꺼리는 나라들에 잠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서구의 환경·윤리 기준이 너무 높아 일부 개도국들은 충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낮은 문턱’을 선호하는 나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또 최근 미국이 일본, 호주와 외교안보 동맹 오커스(AUKUS)를 맺은 뒤 유럽과 균열이 생기면서 중국이 이를 역이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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