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이 '예술촌'으로..도시재생 꽃피워
[경향신문]
서노송동 침침한 쪽방 헐고
서점·미술관·박물관 들어서
“문화공간 변신…놀라워요”
전북 전주시청에서 도로를 건너 100여m 가면 ‘선미촌’이 있다. 성매매가 이뤄졌던 집창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 한복판에서 버젓이 홍등을 밝혀온 이곳은 최근 ‘서노송예술촌’으로 변신 중이다. 어둡고 침침한 쪽방이 헐리고 서점과 미술관, 박물관이 들어왔다. 한때 85곳에 달했던 성매매업소는 현재 7곳만 남았다.
지난 5일 찾아간 서노송예술촌에서는 페미니즘 예술제가 열리고 있었다.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비좁은 골목길 양쪽에는 쓰러져 가는 빈 쪽방들이 남아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빈 주택들을 지키고 있는 것은 길고양이 무리였다. 집창촌이 예술촌으로 변신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골목길을 빠져 나가자 꽤 큰 ‘뜻밖의 미술관’이 나타났다. 예술촌 중앙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지난해 12월 개관했다. 미술관을 구경하던 관광객 정인지씨는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집창촌을 예술촌으로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며 “도시 한가운데에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그 시설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또한 놀랍다”고 말했다.
시, 성매매 여성 직업 전환
지자체·단체 방문 ‘벤치마킹’
선미촌의 변신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전주시와 여성단체들은 인권 유린 현장인 이곳을 새로운 여성운동의 상징 공간이자 문화예술의 힘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바꿔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선미촌민관협의회가 구성돼 집담회와 정책토론을 펼쳤다. 전주시는 예산이 되는 대로 이곳의 폐·공가를 매입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직업 전환을 위한 주거비 지원 및 직업훈련도 병행했다. 첫 결실은 그해 10월 열린 설치미술 전시회였다. 쪽방 건물 두 채를 사들인 전주시는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전시장으로 변신시켰다. 이후 이곳에선 각종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수시로 열리고 있다. 전주에서 활동 중인 시인과 화가 등 예술가 7명이 2018년 예술책방 ‘물결서사’를 열면서 힘을 보탰다. 2019년에는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을 전담하는 현장시청이 들어갔다. 노송동 마을사박물관인 ‘노송늬우스박물관’, 폐자원을 가치 있는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등도 잇따라 둥지를 틀었다. 올해 말이면 서노송예술촌 내 5층 건물을 리모델링한 예술협업 창작지원센터 ‘놀라운 예술터’도 들어선다.
서노송예술촌은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이주가 아닌 점진적 문화재생사업 방식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이곳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간 지자체와 단체는 125곳에 달한다. 인근 주민 이창배씨는 “과거에는 이곳에 산다는 게 다소 창피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중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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