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외모만 다른, 또 다른 한국인"..우리 곁의 난민들

조소희 기자 2021. 10. 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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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아프간을 떠나서 특별 기여자들은 곧 단체 숙소를 나와서 연말 쯤 부턴 각자,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겁니다. 오늘(6일) 밀착카메라는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서 이미 우리나라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또다른 우리 이웃들의 하루를 따라가봤습니다.

조소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나이지리아에 흡수된 소수민족 비아프라 출신 난민 다비드 씨의 집 벽면엔 한국 국기와 비아프라 국기가 걸려있습니다.

[킹다비드/한국 이주 난민 : 나이지리아에 있었다면 저는 이미 길에서 죽었을 겁니다.]

고국에선 친구와 함께 기도를 하러 가는 일도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3년 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어렵게 난민심사를 통과해 병원도 학교도 한국인과 함께 다닐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킹다비드/한국 이주 난민 : 여권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출입국관리소로 가자고…]

하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웃이 됐습니다.

[송나무/글로벌호프 안산센터장 : 한 달에 100만원에서 150만원 남짓 버는 돈으로 푼푼이 모아서 독거노인을 돕겠다고 헌혈도 하고 돌아가신 독거노인 가정을 청소도 하고…]

[킹다비드/한국 이주 난민 : (한국은) 생명의 은인이고, 한국 정부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빌라 반지하방, 2011년 발발한 시리아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온 인도적 체류자 피라스 씨의 집입니다.

원래는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시리아에 파는 무역중개상이었습니다.

[피라스 : 한국 부품을 사고팔았는데 너무 좋아서 (전쟁이 나자) 한국으로 와야겠다고…]

지금은 한국인 등 동료 6명과 경기도 화성의 폐차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피라스 : 함께 일하며 서로 가족이라고 느낍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3년째, 공장장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조용준/폐차장 공장장 : 몸만 외국인일 뿐인 거지, 거의 한국 사람하고 똑같이 일한다고 보시면 돼요.]

먼저 정착한 '선배'로서 이제 곧 이웃이 될 390명의 아프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피라스 :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입니다. (안전해서) 밤에 다녀도 됩니다. (치안 걱정은 없지만 그 시간 동안) 열심히 지내야 합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법무부에 5년 간 꾸준히 난민 신청을 했는데 난민법에서 정한 '종교적, 인종적' 이유가 아니라며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임시로 머무는 것이라 한번 한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아버지 장례식을 가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최융근/통역사 :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에 가려면) 그때 터키에 갔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없고…]

[황필규/법무법인 공감 변호사 :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10대, 20대 대국이라고 하는데 난민 보호율 자체가 100위를 넘는 정말 세계적으로 중간도 못 하는 수준의 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고…]

난민들을 어디까지 이웃으로 받아들일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이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를 풀어야 할 시간이 한걸음 더 다가왔습니다.

(VJ : 이원석 / 인턴기자 : 오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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