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용인시장 흑역사
[경향신문]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에 살라는 옛말이 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수십가지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올 뿐이다. 진천 살던 농부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죽었다가 용인의 동명이인으로 되살아났다는 설화, 용인에서 남편과 사별한 뒤 진천에서 개가한 어머니를 양쪽 아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자 원님이 이 말로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효자 최씨가 진천에서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다 여읜 뒤 용인의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슬퍼하며 지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말은 ‘믿거나 말거나’ 유래들과 무관하게 진천과 용인이 살아서든 혹은 죽어서든 좋은 땅임을 알려왔다. 진천은 예로부터 평야가 넓고 비옥해 농사가 잘되며 인심도 넉넉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용인은 경치가 아름답고 산세가 좋아 명당 자리를 찾아나선 권세가나 재력가들의 묘가 즐비하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뜻을 이렇게 명당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천군이 ‘생거진천’을 브랜드 삼아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반면 용인시는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생거용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살기 좋은 곳이 됐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죽은 뒤라도 묻히고 싶다는,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라는 그 좋은 땅 용인에 불명예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경기 용인시갑)이 민선 6기 용인시장 재직 당시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일 구속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를 포함해 용인시장을 지낸 이들 6명 중 5명이 비리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직인 백군기 시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바 있어, 1995년 지방자치선거 시행 후 선출된 민선시장 7명이 예외 없이 재판에 넘겨지는 흑역사가 이어졌다.
서울 크기의 용인시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특례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서울에 가깝다는 이점에 수지·동백·죽전 등 신도시군이 형성됐다. 시장들이 연이어 구속된 것은 개발 수요가 폭증하면서 도시개발을 둘러싼 인허가 등 이권에 개입한 결과이다. 명당에서 비리가 움텄다니 아이러니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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