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들이 쓴 '용민정음' "내 나이 육십 넘어 배워 만든 한글 서체, 널리 알려 쓰여지길.."
[경향신문]
삐뚤빼뚤해도 정감있는 글씨체
칠곡군, 다양한 상품에 담아
“어릴 적 배움의 기회가 없어서 한글을 깨칠 수 없었지만, 이런 이유로 내 나이 육십이 넘어 배우는 공부가 더 즐겁구나….”
뒤늦게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 할머니들이 올해 한글날을 맞아 자신들의 글꼴이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른바 ‘용민정음(用民正音·사진)’을 발표했다. 이는 훈민정음의 첫 글자인 ‘가르칠 훈’(訓)을 누구나 두루 사용한다는 의미를 담아 ‘쓸 용(用)’ 자로 바꾼 것이다.
칠곡군은 오는 15일까지 칠곡군청에서 5명 할머니들의 글꼴(이하 ‘칠곡할매글꼴’로 통칭)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이 글꼴로 만든 다양한 상품을 전시한다고 6일 밝혔다. 삐뚤빼뚤하지만 정감있는 글씨가 새겨진 병풍, 술잔, 부채 등 30여점을 공개해 한글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전시회 첫날인 이날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를 창립하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등 한글 보급과 교육에 앞장선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의 손자 최홍식 교수(68)가 행사에 참석했다.
최 교수는 칠곡할매글꼴을 만든 할머니 5명을 만나 우리말에 대한 평소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한글학회 재단이사, 외솔회 명예이사장, 연세대 이비인후과 명예교수 등을 지냈다.
최 교수는 “한글은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이지만, 공공기관에서조차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칠곡할매글꼴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국으로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석자 추유을 할머니(87)는 이날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지키고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대중화에 힘쓴 고 최현배 선생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 할머니는 외솔 선생의 제사상에 올려달라며 자신이 직접 재배한 햅쌀을 최홍식 교수에게 전달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글을 배우지 못해 ‘어리석은 백성’이 됐다”면서 “하지만 이분들은 한글을 깨치면서 훈민정음이 추구하는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앞서 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400명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했다. 글꼴 이름은 원작자 5명의 이름을 따서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로 각각 지었다. 다섯 종류의 칠곡할매글꼴은 디지털 전환 작업을 거쳐 지난 5월 한컴오피스에 정식 탑재됐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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