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만드는 독창적 도구 '유기촉매'로 제약 혁신과 친환경을 구현하다(재종합)

이정아 기자 2021. 10. 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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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위원회 수상자 공적 설명자료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AFP/연합뉴스 제공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상위원회는 "분자를 만들기 위한 정확하고 새로운 도구인 유기촉매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했다"며 "이들의 연구 성과는 제약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화학을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상위원회가 이날 공개한 수상자 공적에 따르면 산업과 연구 분야는 대부분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하거나 질병을 억제해 치료하는 등 분자를 구성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최종 산물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화학 반응을 제어하고 가속화할 수 있는 물질인 '촉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들어가는 촉매는 배기 가스의 독성물질을 무해한 분자로 바꿔준다. 우리 몸속에는 생명에 필요한 분자를 자르거나 붙이는 효소 형태의 촉매가 수천 가지나 있다. 

화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촉매가 '금속'과 '효소' 등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두 학자는 2000년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세 번째 새로운 유형의 촉매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것을 '비대칭 유기촉매'라고 부르는데 작은 유기분자를 기반으로 한다. 

촉매는 플라스틱, 향수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베냐민 리스트 교수는 1970년대 초 아미노산 중 하나인 '프롤린'이 촉매로 사용된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그는 25년간 아무도 이에 대해 계속 연구하지 않은 이유가 프롤린이 촉매 기능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롤린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분자의 탄소 원자를 결합하는 일(알돌 반응)을 촉매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한 결과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화학자들은 분자를 분해하거나 결합할 수 있는 수많은 촉매들을 발견했다. 이 덕분에 이제는 의약품과 플라스틱, 향수, 식품 향료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수천 가지의 다양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사실 전세계 산업의 35%가 화학적 촉매 작용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촉매가 '금속'과 '효소' 등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금속 촉매는 전자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분자에게 주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분자 중 원자 사이의 결합을 느슨하게 하기 때문에 상한 결합이 끊어지고 새로운 결합이 생길 수 있다. 또 산소와 물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금속 촉매는 산소나 물기가 없는 환경에서 사용해야 한다. 대규모 산업에서는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심지어 금속 촉매는 환경에 해로운 중금속이 대부분이다. 
 
효소는 단백질이다. 모든 생물에는 생명에 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수천가지 효소가 있다. 효소 대부분이 비대칭 촉매작용을 일으키며, 항상 하나의 거울분자를 갖고 있다. 이들은 또한 나란히 작용한다. 한 효소가 반응을 끝내면 다른 효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콜레스테롤이나 엽록소, 독소 중 하나인 스트리크닌 같은 복잡한 분자를 정밀하게 만들 수 있다. 

효소는 매우 효율적인 촉매이기 때문에 1990년대 화학자들은 원하는 화학반응을 유도하는 새로운 효소 변이체를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유명한 연구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스크립스연구소에 있는 카를로스 바바스 박사다. 이 연구실에서 당시 박사후연구원이었던 리스트 교수는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을 만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독일연구재단 제공

리스트 교수는 항체를 촉매로 쓰고자 했다. 항체는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들어왔을 때 붙는 물질이다. 리스트 교수와 동료 화학자들은 그 대신 항체가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재설계 했다. 

리스트 교수는 효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효소는 아미노산 수백 개로 이뤄진 거대분자다. 또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금속이 들어 있다. 어떤 효소들은 금속의 도움 없이도 화학반응을 유도한다. 이런 효소들은 몇 개의 아미노산에 의해 이런 기능을 한다. 리스트 교수는 아미노산이 효소의 일부인지, 아니면 아미노산 자체가 효소 기능을 할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는 1970년대 초 아미노산 중 하나인 '프롤린'이 촉매로 사용된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당시로부터 25년이나 더 된 얘기였다. 그간 프롤린의 촉매 기능을 계속 연구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리스트 교수는 아무도 이에 대해 계속 연구하지 않은 이유가 프롤린이 촉매 기능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롤린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분자의 탄소 원자를 결합하는 일(알돌 반응)을 촉매할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프롤린이 효과적인 촉매이며, 비대칭 촉매 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자연적으로는 거울분자 두 개 중 한쪽이 훨씬 더 잘 형성되는데, 원하는 분자만 골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유기촉매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주로 비대칭 촉매 작용을 유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분자가 만들어질 때 두 개의 서로 다른 분자가 형성되기도 한다.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거울 분자'라고 부른다. 화학자들은 특히 의약품이나 아로마 오일 등을 만들 때 종종 이 거울 분자 중 하나만 원활하게 만들고자 한다. 

서로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유기촉매를 발견하다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리스턴대 화학과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제공

한편 당시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로 옮긴 맥밀런 교수도 동일한 목표 하에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금속을 이용해 비대칭 촉매를 개선하는 연구를 해왔다.

그는 금속 촉매가 산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금속의 특성이 매우 민감해 산업에서 사용하기 어렵고 값이 매우 비쌌다. 또한 금속의 특성상 물기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실제 산업현장에서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버클리대로 온 맥밀런 교수는 금속이 아닌 다른 재료로 새로운 형태의 촉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가 금속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으로 전자를 주거나 받을 수 있지만,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유기 분자)를 이용한 촉매를 만들고자 했다. 탄소 원자가 안정적인 구조로 배열 돼 있는 유기 분자는 산소와 질소, 황, 인 등이 붙을 때마다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 

맥밀런 교수는 이미늄 이온을 형성할 수 있으며 전자에 대해 친화력이 강한 질소 원자를 포함한 촉매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촉매를 이용해 디엔과 필로디엔을 형성하는 딜스 알더 반응에 작용한 결과 뛰어난 촉매 작용을 확인했다. 일부 유기 분자 촉매는 비대칭 촉매 작용에도 탁월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촉매에 '유기촉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0년 1월 리스트 교수가 그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 직전, 맥밀런 교수는 이미 과학저널 편집부에 원고를 제출했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촉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발견했다. 2000년 이후 유기촉매는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리스트 교수와 맥밀란 교수는 유기촉매가 수많은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여전히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그들은 매우 다양한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데 사용하는 친환경적이로 저렴하며 안정적인 유기촉매를 여럿 설계했다.

또한 후대 화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성과를 활용해 새로운 의약품과 태양전지에서 광자를 포착하는 분자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유기촉매는 이처럼 인류에게 매우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유기촉매를 사용하면 화학 생산 공정에서 각각 중간 과정의 생성물을 불리하고 정제하지 않아도 연쇄적으로 최종 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캐스케이드 반응). 화학 공정에서 시간이나 비용, 재료 등을 최소로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의약품 생산에 감초 역할을 하는 유기촉매

대표적인 거울 분자인 리모넨 분자. 리모넨은 아로마의 일종인데 D형과 L형 이성질체에 따라 레몬향과 오렌지향을 넘나든다. 향의 강도가 100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유기촉매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의약품 생산 분야다. 제약 연구에서는 비대칭 촉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개발된 의약품들은 대부분 필요한 분자 외에도 그 분자의 거울분자가 상당수 들어 있었다. 문제는 거울분자가 필요한 분자가 해야하는 일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임산부의 입덧 치료제로 시판됐던 탈리도마이드가 심각한 기형아를 만들었던 부작용의 원인도 바로 이 거울 분자가 배아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유기촉매를 사용해 거울분자들 중 원하는 분자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희귀한 식물이나 심해 유기체 등에서 고량만 추출하고도 필요한 물질을 인공적으로 대략 생산할 수 있다. 제약사들은 유기촉매를 이용해 간단히 의약품을 만들기도 한다. 불안장애와 우울증 치료제인 '파록세틴', 독감 등 호흡기감염질환을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 '오셀타미비르'가 바로 유기촉매를 이용한 것이다. 

요한 아크비스트 노벨화학위원회 위원장은 "이 촉매에 대한 개념은 독창적인 만큼 간단하다"며 "왜 대다수 학자들이 이 촉매에 대해 일찍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해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답은 간단하다.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가 가끔은 떠올리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화학자들은 금속과 효소만이 촉매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베냐민 리스트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는 이런 편견을 벗어버리고 화학계에서 수십 년 동안 고민해왔던 문제에 대해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개발한 유기촉매는 현재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고 있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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