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는 한 척의 항모"..미-중 경쟁의 최전선되나
국영기업 규제 등 걸림돌..중국 왜, 지금 움직였나?
'하나의 중국' 비켜간 대만..가입 거부 명분 안돼
아·태 무역질서 재편 임박?..선택의 기로에 선 미국
판이 커졌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중국과 대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시피티피피) 동시 가입 신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무한경쟁의 서막이다. 최후에 웃는 건 어느 쪽일까.
지난달 16일 밤 중국이 갑작스레 가입 신청 사실을 공개하자 전세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피티피피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이 모태다. 당시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2015년 4월 이 협정의 의미에 대해 “한척의 항공모함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당시 중국 견제를 위해 협정 가입국 간 무역질서 바로 세우기를 목표로 삼았다.
실제, 30개 장으로 이뤄진 협정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협정 17장은 국가가 50% 이상의 지분 또는 의결권을 확보한 ‘국영기업’(SOEs)에 대한 연례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등으로 인한 공정경쟁 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 경제 전문지 <포천>이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목록에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기업이 모두 124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중국 중앙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49개를 포함해 국영기업은 82개에 이른다. 국영기업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협정은 그 밖에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18장), 노동권 보장(19장), 환경보호(20장) 관련 규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이 탈퇴하며 남은 국가들이 후속 협정을 체결했지만, 무역질서 관련 규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국도 시피티피피 가입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왜 가입 신청을 했을까? 일부에선 신청 전날 미국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함께 안보 동맹인 ‘오커스’ 결성을 발표한 게 ‘방아쇠’가 됐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관련성을 즉각 부인했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대해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지난달 23일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 기고 글에서 “중국이 잃은 건 없는 반면 얻을 건 많다”고 짚었다. 가입 신청은 중국에게 ‘꽃놀이패’란 지적이다. 먼저 ‘명분’이다. 가입 신청을 통해 중국은 ‘규칙에 기반한 무역질서’를 중시한다는 점을 안팎에 과시할 수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중국은 자국을 ‘개방적인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미국을 ‘이기적인 보호무역의 대표주자’로 포장해왔다. 중국의 신청 직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내부 균열이 생긴 것이다. 시피티피피 11개 회원국 가운데 6개국이 대외무역의 20% 이상을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 중국의 가입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면, 양자 무역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자 허겁지겁 대만이 등장했다. 대만은 중국보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22일 가입 신청을 했다. 대만은 그동안 다양한 양자 접촉과 관련 법 사전 정비 등을 통해 가입을 위한 공을 들여왔다. 가입 신청 때 국가명 대신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구역’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만은 1990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가트) 가입 신청 때도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중국은 대만의 가트 가입 신청 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맹렬히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트 협정문 제33조가 “대외 상거래 관계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가지는 독자적 관세영역”도 협정 가입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가트 체제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로 재편됐다. 대만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 143번째 회원국이 된 지 21일 뒤인 2002년 1월1일 144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대만의 가트·세계무역기구 가입 협상 수석 대표는 국제 통상법 전문가로 당시 행정원 경제부 무역조사위원 겸 국제경제기구 수석 법률고문이었던 차이잉원 현 총통이다.
대만의 가입 신청에 대해 중국은 다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세상에 중국은 하나뿐이고, 대만은 중국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며 “특정 국가가 대만과 당국 간 왕래를 하거나, 대만이 당국 간 성격의 협상이나 조직에 참여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주펑롄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도 29일 “대만이 세계무역기구에 별도관세구역으로 참여한 것이 (시피티피피 가입의) 선례가 될 순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규 가입 절차를 정한 시피티피피 부속 문서를 보면 중국 쪽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협정 역시 신규 가입 자격을 “가입을 원하는 경제체”로 규정해, 국가가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하다. ‘하나의 중국’ 원칙만으론 대만의 시피티피피 가입 반대를 밀어붙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문제는 20년 전에 견줘 중국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당시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경제 규모와 국제 정치적 위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중국-대만의 시피티피피 가입 문제는 달라진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양쪽의 동시 가입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 대만만 가입되면, 중국의 보복이 예상된다. 반대로 중국만 가입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그 여파를 우려하는 미국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논쟁의 최대 변수는 미국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미국 일각에선 시피티피피에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중국이 가입 신청을 한 뒤엔 이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 내에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설령 복귀하더라도 의회 비준이 쉽지 않다.
미국의 부재 속에 자국을 겨냥해 시작된 시피티피피에 중국이 가입하면, 미국은 ‘한척의 항모’를 탈취당하는 꼴이 된다. 그 결과 패권의 축이 이동할 수도 있다. 미국으로선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바야흐로 시피티피피가 미국과 중국 간 ‘체제 경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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