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의약품 연구와 친환경 화학 혁명 가져온 2명의 화학자 수상(종합) 

김민수 기자,서동준 기자,고재원 기자 2021. 10. 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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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리스트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데이비드 맥밀런 프린스턴대 교수..둘다 한국과 인연 깊어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 AFP/연합뉴스 제공

올해 노벨 화학상은 당뇨병 치료제로 유명한 ‘시타글립틴’을 비롯해 향수 원료 물질 등 광범위하게 쓰이는 화학물질을 금속 없이도 만들어내는 ‘비대칭 유기 촉매’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2명의 화학자에게 돌아갔다. 두 수상자는 한국에서 근무했거나 한국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한 지한파 과학자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 오전(현지시간) 베냐민 리스트(53)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53)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를 202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두명의 수상자는 최근 노벨 과학상 수상자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평균 연령보다도 젊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물리 54세, 화학 57세, 생리의학 57세다.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 노벨위원회 제공

화학 반응에서 촉매란 반응 물질들이 소모되거나 화학 특성이 변하지 않은 채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는 물질을 말한다. 화학적 특성이 변하지 않고 다른 화학 반응의 속도를 높이는 물질이다.

식물의 광합성을 비롯해 생명체의 생리 활성에 관여하는 모든 유기 화학물을 비대칭 합성 화학 물질이라고 한다. 의학적 효과가 있거나 영양분에 포함된 분자들은 비대칭 합성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때 통상 금속과 리간드(유기물질)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리 활성을 위한 의약품을 화학적으로 만들 때 촉매에 사용된 금속이 남으면 독성을 유발할 수 있어 유기 촉매 기술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화학에서 난제로 여겨졌다. 

2명의 수상자는 금속이나 효소를 사용하지 않고 비대칭 합성 화학물을 만들어내는 비대칭 유기 촉매 기술을 개발해 제약 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 노벨위원회는 “오늘날 내구성 있는 화학물질을 만들거나 배터리에 전기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질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분자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화학과 촉매가 관여한다”며 “금속과 효소 외에 세 번째 형태의 촉매인 비대칭 유기 촉매를 2명의 수상자가 2000년대에 독립적으로 개발했다”고 수상자 선정 배경에 대해 밝혔다.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독일연구재단 제공

수상자 중 한명인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낸 김혜진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주 감염병치료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두 분의 연구 이전까지는 금속을 이용한 촉매와 효소를 이용한 촉매가 전부였다”며 “새로운 촉매 기술인 비대칭 유기 촉매를 개발하면서 화학 분야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한수봉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 감염병제어기술연구단장은 “비대칭 유기 촉매는 의약품 합성에 매우 중요하고 산업적으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인체 내에는 효소가 있다. 효소는 자연적으로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유기물질이다. 효소들이 하는 역할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면 좋지만 효소가 워낙 복잡한 물질이라 화학을 통해 만들기는 어려웠다. 수상자들은 금속 없이도 친환경적으로 촉매 반응을 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리스턴대 화학과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제공

특히 비대칭 유기 촉매 기술은 의약품에서 빛을 보게 됐다. 촉매를 통해 분자가 생성될 때 2개의 대칭적인 분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이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김혜진 선임연구원은 “유기촉매의 대칭성을 이용해 의약품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이와 함께 대부분 독성이 있는 중금속 중심으로 이뤄지는 금속 촉매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 의약품에 널리 쓰이게 됐다”고 밝혔다. 비대칭 유기 촉매 기술로 개발된 대표적인 의약 물질이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듀록세틴’과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시타글립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에 걸린 심혈관 환자에 쓰이는 항응고제 '와파린'도 비대칭 유기 촉매로 만들어진 의약품이다. 코로나19 치료제 설계와 연구에서 비대칭 유기촉매 합성방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연구들이 제안되고 있다.

리스트 교수는 196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으로, 1993년 독일 베를린자유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교수로 임명됐다. 2003년부터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촉배접촉분야연구소에서 그룹리더로 들어가 2005년부터는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학계에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여했다. 가장 영예로웠던 상은 2003년 독일화학자협회로부터 받은 칼 뒤스버그 기념상이다. 2012년에는 고트프리트빌헬름라이프니츠상을 수상했다. 리스트는 2005년 일본 도쿄의 가큐슈인대, 2008년 한국 성균관대에서 객원교수로도 재직했다. 2018년 독일과학아카데미인 레오폴디나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맥밀런 교수는 1968년 영국 스코틀랜드 벨실 출생이다. 영국 글래스고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구를 지속하다 1998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로 임용돼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왼쪽)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가 제자들과 한국민속촌을 방문한 모습이다. 박사후연구원이었던 양정운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가 함께 하고 있다. (오른쪽)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가 2016년 대한화학회 유기분과 하계워크샵에서 발표 중인 모습이다. 성균관대·대한화학회 제공

두 사람은 지한파 과학자로 분류된다. 리스트 교수는 올해 2월 제자인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와 함께 베티버 오일의 향기 원리를 유기합성을 통해 밝혀낸 연구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앞서 2008년 11월에는 자연과학부 초청으로 성대를 방문해서 특강을 열기도 했다. 맥밀런 교수는 2016년과 2017년 서울대에서 화학부 석좌교수를 겸임했다.

올해 노벨상 발표는 11일까지 이어진다. 4일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5일 물리학상, 그리고 이날 화학상이 발표됐다. 앞으로 문학, 평화, 경제 순으로 발표된다. 분야별 노벨상 수상자들은 메달과 증서와 함께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 5340만 원)를 절반씩 나눠 받는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상을 받고 이를 중계하는 대면과 비대면 혼합 방식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영향이다. 기존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회와 함께 매년 진행돼 왔다.

노벨위원회 제공

[김민수 기자,서동준 기자,고재원 기자 reborn@donga.com,bios@donga.com,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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