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대서양동맹..美 의존 벗어나 '中 다시 보기' 나서는 유럽
美에 발맞춰 中 견제 → 중국과 독자적 관계 고민
블링컨, 마크롱 면담 등 프랑스 달래기 행보 계속
마크롱은 "일단 두고 보자" 떨떠름한 반응만 보여
'유럽 자립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중국 견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은 미국과의 동맹에만 매달리기보다는, EU의 이익을 따져 주체적 외교·안보 노선을 걷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 전환점이 된 건 지난달 미국·영국·호주의 3자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 발족이다. 오랜 세월 동안 미국과 유럽이 맺어 온 대서양동맹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생겨 버렸다는 얘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 등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열린 EU-서부 발칸 정상회의에서 최우선 의제로 논의된 건 유럽 군사 통합과 안보 협력 추진, 자율성 강화였다. 8월 미국의 일방적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에 대한 유럽의 불만이 가라앉기도 전에, 오커스 출범 후폭풍까지 일면서 대서양동맹에 대한 회의감이 커진 탓이다. 실제 이날 회의에선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EU가 보다 주체적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해 온 '유럽 자체 방위군 창설'도 추진력을 얻는 분위기다.
오커스 발족은 미국 의존도가 높은 EU에 큰 경종을 울린 일대 사건이다. 최대 피해자는 앞서 호주와 맺었던 디젤 핵잠수함 계약(660억 달러 규모)이 파기돼 손실을 입은 프랑스지만, EU는 이를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관련한 유럽의 이익이 향후 미국의 그것과 양립하기 힘들 수 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최근 위기를 교훈 삼아 우리 자체의 힘을 키우고, (미국에 대한) 위태로운 의존을 줄여 탄력성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며 EU의 자율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EU는 그간 중국과의 무역 확대를 꾀하면서도, 중국의 경제·정치적 부상을 경계해 왔다. 지난해 말 중국과의 포괄적 투자협정 타결 후 비준을 망설이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동맹 우선'을 외친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중국 견제'에 있어 미국과 찰떡궁합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EU는 중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췄던 종전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과 독자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경쟁자이자 협력자인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미셸 상임의장의 이날 발언은 EU의 변화 가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다음 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화상으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EU와 중국이 밀착한다 해도, 한계선은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기반으로 한 미국·유럽의 전통적 동맹이 단숨에 깨질 리는 없다. 지난달 미국과 EU가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TTC) 회의를 열어 불공정 무역 관행 해결책을 논의한 것도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한 협력의 일환이다. 또 동유럽 회원국들에는 EU의 독자 방위 체제 구축에 대한 회의론이 퍼져 있기도 하다.
미국도 프랑스와의 관계 회복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4일 프랑스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일정이었는데, 미 CNN방송은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면담에 대해 "매우 생산적, 전향적"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동맹국 프랑스의 중요성을 안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일단 두고 보자"고만 답했다. 아직까지는 오커스 사태와 관련, 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반응이었다. 벨기에 소재 싱크탱크 '프렌즈 오브 유럽'은 "EU가 '전략적 자치'라는 목표를 세워 통합하고, 그동안 논의만 했던 군사적 투자를 실행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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