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벌써 25명, '노벨상 제로 콤플렉스' 빠진 한국..학계선 "이것부터"

변휘 기자 2021. 10. 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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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물리학상 마나베 슈쿠로/사진=AP/뉴시스

지난 5일(현지시간) 발표된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 중에는 동양인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 마나베 슈쿠로(90·미국, 일본명 마나베 요시로) 프린스턴대 기상학자다. 그를 포함 일본 국적이거나 일본 출신인 노벨상 수상자는 총 29명, 특히 과학(물리·화학·생리의학상) 부문 수상자는 25명으로 늘었다.

120년 간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주름잡던 노벨상이지만, 과학 분야에선 일본이 노벨상의 종주국 스웨덴을 제친 세계 5위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무려 19명의 과학 부문 수상자를 배출, 미국(79명)에 이은 세계 2위다. 일본아 세계 최상위권 기초과학 역량을 과시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환호를 바라보는 우리 과학계의 표정은 씁쓸하다. 조심스러운 기대가 낙담으로 바뀐 게 여러 번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단 1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2015년 중국마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투유유)를 배출하면서 조바심은 더 커졌다. 삼성전자와 BTS, 기생충에 오징어게임까지 한국은 IT와 문화 강국으로 우뚝섰다. 하지만 매년 10월 고개를 드는 한국의 '노벨 과학상 콤플렉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슈다.
한국 노벨 과학상? 너무 급하다…일본 기초과학의 '오랜 역사'
한국인은 매년 노벨 과학상 후보군에 거론된다. 정보분석 서비스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는 2002년부터 '노벨상이 유력한 과학자 명단'을 발표해 왔는데, 2014년 유룡 카이스트 교수, 2017년에는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가 포함됐다. 또 2018년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소속의 로드니 루오프 교수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고, 작년에는 현택환 서울대 교수, 올해도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름을 올렸지만 실제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6일 노벨 화학상 발표가 남았지만, 역시나 한국인의 '깜짝' 수상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에 실패하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노벨위원회가 심사기준을 공개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과학계에선 기초과학에 무관심했던 연구풍토를 원인으로 꼽는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전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마나베의 연구는 1960년대 업적이다. 우리나라는 기상학자도 없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한일간 기초과학 연구의 '연배' 자체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과학계 일각에선 한국이 연구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기초과학에 매진하게 된 시점을 1989년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 수립으로 보는데, 고작 30여년이 흐른 셈이다. 기초과학 연구의 역사가 200년에 달하는 미국·유럽은 물론 이미 1918년부터 기초과학 연구자들에 '과학연구비' 지원금 제도를 시행해 온 일본과 비교해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초과학에대한 그동안의 투자와 관심도는 낮았던 반면 노벨 과학상에 대한 기대감만 커진 조급증을 지적한다.
"올해 노벨상, 기초연구의 중요성 증명"…'과한 집착' 버려야
노벨상
기초·원천 연구 육성에 대한 '철학 부재'를 꼽기도한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는 순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없다. 기후변화 대책도 정치인이나 과학의 가면을 쓴 비전문가들이 주도한다"고 지적했다. 4일 노벨 생리의학상이 특정 질병 치료제 개발 등이 아닌 인체의 기본 생리현상인 촉각 원리 연구자에게 돌아가자 한희철 고려대 교수는 "호기심 때문에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초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사회 전반의 인식 및 교육 환경 개선 요구도 나왔다. 박병주 서울대 의대 교수는 "창의력을 키우는 방향의 교육 과정 개편이 필요하다"며 "대학도 기초 의학에 대한 지속 가능한 연구가 가능하도록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직 연세대 의대 교수는 "기초과학은 결국 국력의 문제다. 당장 투자해서 금방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꼬집었다.

청년 과학자들의 연구환경 개선도 해묵은 난제다. 지난달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임혜숙 장관과 청년과학기술인의 대화에서 한 청년 과학자는 "하루 10여시간씩 연구에 몰두해도 고작 100만원 안팎을 받아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나라 노벨상 수상자들처럼 20~30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겠나"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도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이에 청년 과학기술인들의 연구 몰입 제도·환경 조성을 목표로 학생연구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국가장학금부터 박사후연구자, 신진연구자, 창업 지원까지 청년 과학자의 생애전주기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또 기초연구 지원 예산을 2017년 1조2600억원에서 내년 2조5200억원으로 5년 만에 두 배로 증액했다. 노벨상 거점인 스웨덴 등과의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스웨덴 과학주재관' 신설도 추진 중이다.

한국의 노벨 과학상 집착이 오히려 과학계의 건전한 발전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연구재단은 2018년 9월 발표한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벨 과학상 콤플렉스는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자신감의 부재가 드러나 있다"며 "그 동안 연구들은 노벨 과학상이라는 목표 자체에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2001년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50년 간 30명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정했지만, 품위가 없다는 지적에 결국 삭제했다. 그럼에도 20년 만에 목표의 과반의 달성했다. 노벨 과학상에 집착하는 한국 과학계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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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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