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차와 반미 함께 나누며 '세계로 평화여행' 떠나고 싶어요"

김보근 2021. 10. 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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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베트남 출신 레 호앙 응언 매니저
전통찻집 ‘열시꽃’의 레 호앙 응언(가운데) 매니저가 베트남 대표음식인 반미를 소개하고 있다. 3명의 공동발기인 가운데 한명인 구수정(맨 오른쪽) 한베평화재단 이사가 뒷쪽에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세계로 향하는 평화여행을 시작합니다.” 지난 5일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찻집 ‘열시꽃’의 매니저 레 호앙 응언(37)씨는 찻집의 출발을 평화여행에 비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시꽃 ’은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평화여행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1999년 처음 제기한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 그리고 그 문제를 2002년 단행본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책갈피)으로 펴낸 여행작가 김현아씨가 그와 함께 이 사업을 공동발기했다.

지난 5월 세 사람은 평화여행 사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임을 감안해 우선 찻집을 연 것이다. 개업 첫날 레 매니저를 만나 인사동에서 꿈꾸는 여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5일 인사동에 한옥 찻집 ‘열시꽃’ 개업
구수정 한베재단 이사·김현아 작가 함께
“오전 10시 피는 꽃처럼 위로 주는 공간”

2003년 대학때 ‘한국군의 학살’ 처음 알아
‘피해자’ 지원 단체 인턴·성공회대 유학
청소년단체 평화여행 담당자로 활동

서울 인사동길 42-8 2층짜리 한옥 관훈제에 자리한 찻집 열시꽃. 한국의 채송화와 같은 꽃의 이름이다. 사진 이정용 기자

찻집 ‘열시꽃 ’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2012년 서울 사대문 안에 처음으로 지어진 2층 한옥인 ‘관훈재’ 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심플한 현대적 디자인으로 꾸몄다. 또 오미자차나 쑥차와 같은 한국 전통차를 판매하면서도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함께 제공한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움을 더함으로써,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내·외국인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 것이다.

찻집 이름인 ‘열시꽃’도 여행과 소통을 의미한다. 열시꽃 은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꽃인 ‘호아 므어이 지어’를 뜻에 맞춰 번역한 이름이다. 한국의 채송화와 같은 꽃이다. 한국의 채송화도, 베트남의 호아 므어이 지어도 오전 10시를 전후로 꽃이 활짝 핀다.

재단의 구 이사는 2000년대 초 학살 피해 주민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베트남 현지의 마을을 찾을 때 보았던 이 꽃을 잊지 못한다. 오전에 마을 입구로 들어설 때 일행을 반겨주듯이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그는 피해자 증언을 듣기 위해 방문하던 무거운 마음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공동발기인 세 사람은 “어떤 여행객도 이 찻집에 들어서면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이름을 열시꽃 으로 지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나선 존재다. 그 인생 여행에서 사람들은 무수한 만남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레 매니저도 고향인 베트남 중부 역사도시 호이안을 떠나 2002 년 호치민 국립대 한국학과에 입학하면서 인생 여행을 본격화했다. 2학년 때 구 이사와 만남은 그의 인생을 크게 변화·성장시켰다. “그 이전에는 베트남전쟁을 미국에게 승리한 전쟁으로만 배웠다”는 그는 “구 이사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졸업 뒤 구 이사가 만든 베트남 엔지오 ‘굿윌’(Good Will) 에서 일하다가, 2007 년 베트남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10개월간 인턴생활을 했다. 그 뒤 2012~13년에는 유학을 와 성공회대 아시아비정부기구학전공 (MAINS)에서 활동가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고 석사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레 매니저가 이렇게 쌓은 인생 여행의 경험은 한국 청소년들과 만남을 통해 더욱 넓게 퍼져갔다. 2015년부터 부천에 있는 한 청소년단체에서 평화여행 담당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한국 청소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1월까지 이 단체에서 만난 청소년들과 함께 베트남, 미얀마, 제주 등 다양한 평화여행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누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맨 왼쪽부터 성민규, 구수정, 레 호앙 응언, 방희지씨. 사진 이정용 기자

마침 이날 평화여행으로 인연을 맺었던 청년들이 레 매니저를 응원해주기 위해 열시꽃을 찾았다. 이제는 성장해 환경단체에서 일한다는 20대 성민규씨는 “열시꽃의 독특한 크로스오버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성씨는 “전통차와 베트남 반미를 함께 파는 곳은 이제까지는 없었다”며 “한옥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열시꽃이 독특한 모임 장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배터리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20대 방희지씨는 “청소년시절 평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응언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며 “쑥차와 베트남 커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이 찻집은 정말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라고 했다.

레 매니저는 “매우 이질적인 것 같은 한국의 전통차와 베트남 반미가 멋진 조합을 만들었듯이, 열시꽃에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만남의 실험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10월중에는 개관 기념으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소속 손순옥 화가의 ‘열시꽃’ 전시를 열 계획이다. 손 화가는 2010년 베트남 평화여행에서 처음 본 뒤 열시꽃을 주제로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

레 매니저는 또 “앞으로 여행사 몽투투나 글쓰기 모임 어딘글방 활동 등도 진행할 예정”이라며 “열시꽃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열시꽃에서 출발하는 평화여행의 목적지는 이렇게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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