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엎친 에너지 대란, 덮친 스태그 공포

은진 2021. 10. 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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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영향 에너지 수요 급증
공급 부족에 中·인도 등 전력난
에너지가격 폭등 물가 상승 요인
경기회복 이전 'S의 공포' 직면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기가 점차 회복세로 접어들고, 각국이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면서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지자 중국·인도 등은 전력난을 맞았다. 이로 인해 글로벌 제조산업 공급망 불안으로 세계 경기가 체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고꾸라진 상황에서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배럴당 40달러대 초반이었던 브렌트유 가격은 4일(현지시간) 81.47달러까지 폭등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8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74달러(2.3%) 상승한 배럴당 77.62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14년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 가격(10월물 기준)은 톤당 240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세 배 가량 오른 것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값이다. 천연가스 거래 가격도 100만Btu(열량 단위)당 2.62달러에서 5.83달러로 2배 넘게 올랐다.

최근의 에너지 대란은 경제 회복으로 인해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세계 경제가 회복돼 산업 생산이 늘고 있지만, 공급량이 부족한 탓이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석탄 생산 감축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국은 206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강도 높은 에너지 소비 절감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높은 화력 발전 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이는 탄소 감축 목표치를 맞추려다 전력 수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에서도 대규모 전력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 중앙전력국(CEA)과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인도 내 석탄발전소 135곳 중 72곳은 석탄 재고가 사흘 치도 남아있지 않았고, 16곳은 재고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풍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기후변화로 바람이 줄면서 풍력 발전량이 감소하자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을 높였고,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각종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세계 경기에 위협적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연료가격 변동성과 전력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전세계는 향후 수십년 동안 불안정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에너지 주도 인플레이션과 개인 불평등의 악화, 정전의 위협, 경제성장과 생산량의 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83(2015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이 6개월 연속 2%를 넘은 것은 2012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분기 기준으로 보면 3분기 물가 상승률은 2.6%로, 2012년 1분기(3.0%) 이후 최고치다.

특히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2016년 4월에 1.9% 오른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근원물가에 반영되는 공업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한번 오르면 쉽게 낮아지지 않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지난달 공업제품의 가격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4%로 2012년 5월 3.5% 이후 가장 높았다. 개인서비스는 전달에 이어 2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향후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은 더 많다.

기획재정부는 "공급망 차질, 국제유가 상승폭 확대 등 공급측 요인이 장기화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도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청 역시 "국제유가, 환율, 원유(原乳) 상승 등으로 인해 석유류, 가공식품 등 공업제품의 물가가 오르고 있고, 전기료도 인상 예정이어서 물가 인상이 더 크다"고 밝혔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우리 정부의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우리 경제의 거시적 흐름에서 (물가 상승률) 2% 수준은 부담이 없을 것으로 보고, 연간 2%선에서 물가가 잡힐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스태그플레이션까지는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진기자 jine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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