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고려시대'로 돌아간 금융정책

김현동 2021. 10. 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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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금융부장
김현동 금융부장

"시장 친화적인 방식을 쓰지 않고 고려시대 금융 방식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하겠냐." 10년 전 2011년 8월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가계부채 종합대책 이후 일부 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하자 "전근대적인 방식의 대응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면서 한 말이다.

배경은 이러했다. 가계대출이 800조원을 넘어서자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잡기에 나섰다. 2011년 1월 취임한 김 위원장은 금융위 직원들에게 "스스로의 책임하에 과감한 결단도 피하지 말라. 모든 책임은 나에게 돌리면 된다"고 했다. 그해 6월 간부회의에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생각하면 요새 잠이 오지 않는다"고 강력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석동 위원장 스스로는 "6월 중 시장에서 지나치게 강하다고 할 정도의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6·29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이다.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개선하기위해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 목표를 제시했다. 대책 발표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부행장을 직접 불러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월의 0.6%로 맞추라고 지시했다. 그 과정에서 농협·신한·우리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6·29 대책'에는 고정금리 대출과 비거치식 대출비중 확대 외에 총량 규제 같은 강력한 대책은 없었다. 김석동 위원장이 직접 "가계대출 총량규제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기에 그렇다. 다만 금융당국이 간접적으로나마 명목 국내총생산(GDP) 수준의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제시하면서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011년 박재완-김석동 경제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가계대출은 1700조원을 넘어섰다. 10년 사이에 가계부채는 곱절로 늘어났다. 급기야 홍남기-고승범 경제팀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6%대로 억제하겠다는 총량규제 카드까지 꺼냈다.

올해 8월말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취임사로 "가계부채가 내포한 위험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가계부채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다. 취임 이후로도 일관되게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고승범 위원장 역시 가계대출 중단 사태를 막지는 못했다. 금융의 본질은 소비자와의 신뢰에 있는데, 대출 중단은 은행에 대한 고객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다. 은행이 망한 것도 아닌데 대출중단이라면, 어떻게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길 수 있을까. 고려 시대라면 모를까, 21세기 대한민국 금융정책을 지휘하면서 대출 중단 사태를 야기했다면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출 중단을 가계부채의 시스템 리스크로의 전이 위험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통과의례라고 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금융안정을 명분으로 금융 수요자 보호라는 금융위 본연의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다. '관치의 화신'이라던 김석동 위원장조차 총량규제를 포기하고, 대출 중단을 고려시대에서나 벌어질 만한 금융 방식이라고 힐난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가계부채 증가의 책임은 2014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규제 완화와 저금리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 책임을 금융 수요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지난 5일 출범한 토스뱅크는 이런 전 근대적인 금융 방식에 맞서 시장친화적 금융을 표방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금융에서 '고객이 필요할 때 적절한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곳', '고객이 찾지 않아도 최고의 혜택을 먼저 제시하는 은행'이다. 대한민국의 정체가 민주공화국인 것처럼, 금융의 주권은 금융당국과 은행이 아니라 금융 수요자에게 있다는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홍남기-고승범 경제팀은 이달 중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6%대라는 총량 규제와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대출 실수요자 보호라는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담아낸다고 한다. 총량 규제 여파로 일부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졌고, 추가 대출 중단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수요자 보호라는 모호한 목표까지 제시했다. 주택시장 실수요자 범위를 무주택자에서 중산·서민·청년층까지 확대하면서 금융정책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또한 금융 수요층이 총량규제라는 전 근대적 금융정책을 과거처럼 수용할지 사뭇 궁금하다. 시장친화적이고 금융 수요자 중심의 금융정책을 기대한다.

김현동 금융부장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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