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글도 아닌, 대화도 아닌 '글자 대화'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언어학자
세대 정의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1981~1996년 태어난 이들을 밀레니얼세대로, 1997~2012년 태어난 이들을 제트(Z)세대로 지칭한다. 2010년대에는 밀레니얼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더니, 2020년대 들어서면서 어느덧 관심은 제트세대로 향했다. 진보적 정치 성향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비슷한 감수성을 보이는 이들 두 세대는 그러나 디지털 문화 향유 면에서는 그 차이가 매우 뚜렷하다.
먼저 20대 이후부터 디지털 생활에 익숙해진 밀레니얼세대와 달리 제트세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 에스엔에스(SNS)와 밀접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반면 밀레니얼세대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컴퓨터, 인터넷 등과 함께 성장했지만 이들 매체 안에서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글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후 휴대전화와 에스엔에스의 등장으로 사용 방식이 다양해졌다고는 해도, 이들의 무의식에서 글과 대화의 경계는 뚜렷하게 존재한다. 그 이전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글과 대화의 경계란 뭘까?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글은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이고,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다. 글자와 대화의 가장 큰 차이는 일방성 여부다. 글은 쓰는 사람이 혼자 쓰지만, 대화는 상대방과 주고받아야 성립한다.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는 전통적인 작문 교육이 영향을 미친다. 글쓰기의 기본은 각자의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문법을 지키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논리적으로 쓰는 것 또한 기본이다. 그러지 않으면 ‘글을 못 썼다’고 여기고 잘 쓰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글의 대상은 막연하다.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긴 하지만 개인이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일 경우 더 그렇다.
대화는 달리 배울 곳이 없다. 발표나 토론을 가르치기는 하는데, 발표는 일방적이고 토론은 정해진 틀 안에서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대화 교육의 부재는 이전 세대까지 굳이 배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란 별도의 교육 과정 없이 가족과 사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밀레니얼세대에 이르러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글 중심 인터넷에 익숙해진 이들은 휴대전화, 에스엔에스 확산과 맞물린 변화를 수용하면서 글이 가진 일방성을 그대로 채택했다. 에스엔에스에서 밀레니얼세대가 쓴 강한 주장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전 세대가 보기에 다소 공격적으로 읽히긴 하지만 이들 세대 간에는 얼핏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차가 존재하니 일반화는 조심스럽다.
제트세대에게는 글 이전에 에스엔에스가 있다. 이미 글과 대화가 섞여 있는 형태다. 따라서 이들은 글의 일방성을 조심하고 경계한다. 글을 통한 소통은 비공개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또한 ‘박제’에 대한 염려로 자신이 남긴 것들이 일정 기간 이후 자동 삭제되는 공간을 찾는다. 이런 성향으로 얼핏 제트세대가 밀레니얼세대에 비해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휴대전화와 에스엔에스 세계에서 이들의 적극성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보다 에스엔에스를 통한 소통에 익숙한 제트세대는 대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답은 그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밀레니얼세대에게 글은 여전히 글이었다. 조심스럽지만 일방적인. 하지만 제트세대에게 글은 다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글과 대화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이전에 없던 ‘글자 대화’를 만들어냈다. 언어 역사로 볼 때 이는 매우 큰 변화다. 이들이 만들어낸 ‘글자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는 대화의 기본 정의를 변화시켰다. 즉 ‘마주 대하여’에 디지털 환경을 추가한 것이다. 이들은 얼굴을 마주할 때는 물론 온라인상에서도 늘 대화를 한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말과 글 중 편리한 것을 선택하여 사용한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을 때도 있지만 언어학자인 나로서는 그들의 선택 범위의 확장은 오히려 부럽다.
언어의 세계에는 늘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정착하며 역시 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후퇴란 없다. 제트세대의 ‘글자 대화’는 이미 정착한 지 오래다. 우리가 할 일은 걱정이 아니다. 지켜보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어떻게 변화하고 발달할 것인가. 분명한 건 이미 그 윗세대인 우리도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전방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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