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로니아에 너무 매달렸다

한겨레 2021. 10. 6. 18: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엄마아들 귀농서신]신나게 해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시큰둥해. 찾는 사람이 적어지니 무얼 잘못한 걸까,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작목을 선택했으니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제품에 매달렸던 거지.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노랑은 힘이 세다. 속 깊은 곳에 들어앉은 열망을 훌쩍 끌어올린다. 요즘, 들녘이 노랗다. 푸근하고 넉넉해져 절로 고개를 숙인다.

벌써 6년 전이네. 6차산업(농촌융복합산업) 인증을 받았어. 처음부터 인증을 위한 교육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이틀씩 시간 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교육 중에 수확철이 겹치기도 해서 애를 먹었지. 5개월에 걸쳐 100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융복합교육과, 두차례에 걸친 컨설팅을 거쳐 6차산업 인증을 받았다. 생산, 가공, 관광, 체험사업을 두루 포함하는 만큼 요건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았어. 매번 진땀이었지.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크게 한몫을 했다. 우리 농가로 들어오는 길은 좁아서 버스가 들어올 수 없었어. 결국 이장을 통해 트럭 두 대를 동원해서 갈아타고 이동해야 했단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미안했는데, 아이들은 트럭 뒤칸에 타고 가며 꺄르륵. 6차산업 ‘인증’은 매출이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가능하더구나. 소규모 사업자이던 우리 농가는 그 조건을 정말 어렵게 넘었어. 소농들을 이래저래 불청객 취급하는 문턱이 없어야 6차산업의 저변이 커갈 텐데 말이야. 이제사 말하지만 인증 과정 중에 농부들 형편을 배려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단계도 많았다. 개선해야 할 문제이고 농부가 기획하지 않는 사업의 한계라는 생각이다.

생산이야 농사를 짓고 있으니 기본이지. 가공부터가 문제다. 수확하는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하는 작물들이지만, 조금이라도 가공하면 제철을 넘어서도 걱정이 없다. 기를 쓰고 아로니아 가공공장을 갖췄다. 공장만 갖추면 될 줄 알았는데 그제야 시작이더라. 주변의 농가에서 생산하는 과일을 찾아 혼합한 주스부터 발효주도 해보고. 농업기술원에서 가지고 있는 특허기술도 이전받아 천연발효 식초도 냈다. 마침 농촌진흥청에서 여는 농가 상품 디자인전에 응모하여 전국 단위에서 선정하는 장려상을 받기도 했었지. 보고 또 봐도 감각이 뛰어난 상표 디자인이었다. 상품전에 나가면 여러 사람이 디자인을 칭찬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했다. 제품을 준비하는 내내 즐거웠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품평회에 참가하면서 내심 뿌듯했단다.

그때 만난 유기농 산업 엑스포로 유기농이 진짜 미래라고 믿었다. 날로 번창하고 확대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작은 꿈도 꾸었지. 어딘가에 작은 가게라도 하나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가게에 예쁘게 진열할 마음으로, 다양한 꽃차 교육도 받았었지. 이렇게 만들면 붉은 차. 푸른 차. 참 재밌었는데.

다양한 제품을 준비했으니 ‘유통’에서도 할 수 있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설이나 한가위 때면 코엑스 명절 상품전에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부산, 대구, 대전 가보지 않은 데가 없지. 이런저런 상품전에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6차산업 인증을 등에 업고 청주 하나로마트를 시작으로 청주 현대백화점과 서울의 신세계백화점에도 출품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시절엔 절로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과거형인 건 잘 알고 있지? 그렇게 즐겁고 신나게 해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시큰둥해. 찾는 사람이 적어지니 무얼 잘못한 걸까,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작목을 선택했으니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제품에 매달렸던 거지. 네가 봤는지 모르겠다만 창고에 쌓여 있는 스티커 종류만 수십가지 되지 않나 싶다.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 작목 선택부터 신중하지 못했지. 단순하게 열매에만 매료되어 일반적인 수요를 따져 보지 않았던 실수도 통감하고 있다. 만들어놓으면 팔 수 있다는 말은 잘 포장된 말이란다. 코로나 상황과 겹쳐 아무도 찾지 않을 때의 그 마음이란.

신발 장수는 신발만 보인다지. 네가 신혼여행 중에도 끊임없이 미래를 구상했다고 보이더구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유념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땀과 정성이 녹아 있다는 것이야. 세상 어디에도 만만한 것은 없더구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는 마음 잘 알겠어. 정말 어려운 건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킬 수 있을까다. 순수한 땀과 정성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아로니아로도, 6차산업 인증으로도, 예쁘게 잘 지어놓은 집으로도, 정성 들여 만든 디자인으로도 어려웠어. 더 뭘 할 수 있었을까. 쉬운 일은 없다.

한낮의 쩡쩡한 볕에 고추도 널어놓고 가지도 썰어 말린다. 늦게 달린 호박이 없는지 들춰보러 가야겠다. 가을이 익는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