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신임 일본 총리에게 드리는 제안
[세상읽기]
[세상읽기] 임재성|변호사·사회학자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분들을 대리하여 소송 및 집행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변호사 중 한명입니다. 먼저, 일본 100대 총리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일본 사회에 다시 활기가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라는 평가는 이제 새롭지 않습니다. 그 핵심에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손해배상 판결과, 이후 위 소송의 피고였던 일본 기업의 협의 거절 및 판결 불이행, 그리고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수출규제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한국 대법원 판결과 이후 현금화 절차에 대한 일본의 보복 조치인 수출규제를 해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실무급 수준에서 타진하는 여러 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모두 거절하고 있기만 합니다.
그렇게 대법원 판결 이후 3년 가까이 지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 경색이 만들어내는 양국 사이의 여러 피해도 문제겠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분들을 대리하는 처지에서는 무엇보다 고령의 피해자들께서 그 어떤 사과조차 받지 못하신 상태에서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 안타깝고, 비참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께 이 문제에 대한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리인 중 한명인 저의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드리는 제안이나, 긍정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면 피해자, 지원단체와 적극 논의하겠습니다.
제안의 핵심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들이 직접 만나서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그 자리가 책임 있게 성사된다면 논의 기간 중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를 정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①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들 간 최소 3회 이상의 협상, ② ①항의 협상 중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금화 절차 및 추가 자산압류 등을 정지함, ③ ①항 협상 절차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보증하며, 옵서버로서 참여함”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강제동원 문제는 오랜 시간 피해자와 가해 기업이 소송을 벌여온 사안입니다. 대법원 판결 역시 일본 기업에 대한 것입니다.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이 만나 논의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2012년까지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피해자 쪽과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들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피해자 쪽은 수차례 도쿄에 있는 일본 기업들을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모두 문전박대당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한 제안도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제조건 없이, 그럼에도 1회에 끝나는 것이 아닌 3회 이상 지속적으로 만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협상이 필요합니다.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은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단은 한국 정부가 할 수 없습니다. 현금화는 손해배상채권을 가진 피해자의 권리이자 적법한 절차입니다. 한국 정부가 임의로 그 집행을 중단시킬 권한도, 명분도 없습니다. 협상이 성사된다면 협상 기간 동안 현금화를 정지시킬 조치를 피해자 쪽이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9월27일, 한국 대전지방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가진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매각 명령을 결정했습니다. 여러 집행절차가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매각 명령 결정은 최초입니다. 가장 나아간 집행단계입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시간을 끌기 위해 이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 재항고를 하며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즉, 6개월 이후에는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에 대한 경매절차가 시작됩니다. 총리께서 보고를 받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일본 기업 자산 압류 건도 있습니다. 대법원 선고 이후 여러 변수로 집행절차가 늦어졌지만, 이제 구체적인 현금화가 코앞입니다.
3년 동안 꽉 막힌 이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들 사이에 협상이 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신임 총리께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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