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기용 '3가지 칼'..어느 것 하나 사용하기 쉽지 않다
대응 카드는 '품목별 관리'뿐..가스요금 동결 못박아
6개월째 상승률이 2%를 넘는 소비자물가 고공행진 속에 물가 대응 방안을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6일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 안팎으로 상향 조정했다. 올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하락해 물가도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이 엇나가자 전격 수정한 것이다. 기재부는 일단 올해 2% 안팎 수준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향후 추가 상승이 이어질 경우 정책 대응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우리 경제 전체 거시적 흐름과 비교해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수준이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 정부가 물가상승률 2%를 유지하기 위해서 총체적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은 △기준금리 인상 △재정지출 축소 △개별 품목별 관리 등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물가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정공법인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은행의 고유 권한이라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이미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는데,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연내에 한 차례 더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국면에서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시중 통화량이 넘치는데도 정부가 돈줄을 조이기 어렵게 만드는 코로나19 국면도 걸림돌이다. 이론적으로 정부는 조세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도 있지만, 케이(K)자 양극화가 심화하는 탓에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지출을 급격히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정부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 규모는 604조원을 넘겼다. 지난달에는 총 11조원 규모의 국민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금리 인상과 정부의 확장 재정이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시국에 불가피한 ‘정책조합’(폴리시 믹스)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에 남은 카드는 사실상 ‘품목별 관리’뿐이다. 소비자물가 상승에 기여도가 높은 주요 품목을 중심으로 개별적 관리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홍 부총리는 지난달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추, 물오징어, 마른 멸치, 계란 등의 농·축·수산물 개별 품목 가격까지 일일이 언급하며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9월 소비자물가 동향 발표와 함께 기재부가 내놓은 대책도 그 일환이다. 기재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4분기 공공요금 동결, 가공식품 담합인상 모니터링 강화, 농·축·수산물 수급안정대책 마련 등을 통해 총력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물가 안정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계란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지난 2월부터 세금을 투입해 5억개에 이르는 계란을 수입했지만, 여전히 ‘에그플레이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불합리한 가격 결정 구조의 문제가 계란값 급등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는데, 이는 결국 가격 안정을 위해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조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재부는 공공요금 동결 방침도 내세우고 있지만, 주요 공기업들의 적자가 워낙 큰 상황이라 부처 간 엇박자도 나고 있다. 에너지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미 도시가스요금 인상 필요성을 기재부에 전달한 상태다. 원료비가 치솟고 있음에도 지난해 7월부터 가스요금이 동결되면서 가스공사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 부총리는 이날 국감에서 “가스요금을 동결하겠다”고 못 박았는데, 올해부터 원료비 등락에 따라 가스 및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해놓고 적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가격 변동폭이 큰 농·축·수산물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조절을 하는 정도의 역할은 가능하지만, 전체 물가를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고 되레 시장 왜곡을 부를 수도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더 치고 올라가기 전에 금리를 더 올리는 선제 대응이 필요한데, 한국은행이 너무 늦게 움직이는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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