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5개국 "가스 확보하라" EU 압박..탈탄소 속도조절론까지

맹준호 기자 2021. 10.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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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하이퍼 인플레 공포 엄습]에너지값 폭등에 몸살앓는 유럽
천연가스 가격 6개월새 6.5배↑
5개국, 전력시장 재정비 등 요구
더 오르면 산업체 셧다운 가능성
에너지 전환 비판 목소리도 커져
EU, 내주중 정책수단 제시 예정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그레인 지역의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시설.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겨울을 앞두고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프랑스·스페인 등 5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EU에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비상 행동을 촉구했다. EU의 탈탄소 드라이브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분출하고 있다.

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스페인·그리스·체코·루마니아의 재무장관은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해 “EU는 극적인 가스 가격 상승에 대응할 수단을 개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가스 시장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한편 가스 시장에서 교섭력을 강화하고 전력 시장을 재정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5일(현지 시간) 보수당 전당대회가 열린 맨체스터에서 BBC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에너지 대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영국이 위기냐'는 질문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 후 경기회복 과정에 예견된 공급망 문제를 겪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가스 급등에 집단 행동

이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가스 값 폭등에 대한 EU의 공동 접근 및 대응 수단 제시 △가스 공급 계약이 부족한 이유에 대한 조사 △전력 도매시장 개혁 △에너지 자립과 다각화 △보다 예측 가능하고 변동성 적은 탄소 배출 비용 등이다. 특히 5개국 재무장관은 가스 시장에서 유럽의 구매 협상력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전력난으로 가스 구매를 늘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집단행동으로 대응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룸버그는 “(5개국의 요구는) 유럽 각국 정부가 가스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심화하고, 저소득층의 ‘에너지 빈곤’을 초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스 가격 급등세는 무서울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전역에서 올겨울 가스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11월 인도분 가스 가격은 메가와트시(㎿h)당 117.5유로로 뛰었다. 이는 6개월 전인 5월(18유로)의 6.5배 수준이다. 영국도 최근 ㎿h당 3파운드를 돌파했는데 이는 지난 두 달 사이 3배로 오른 것이다.

FT는 “같은 에너지양의 원유로 환산하면 이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인 셈이고 이는 가스 값이 원유 값의 세 배라는 의미”라며 “난방과 전력을 가스에 의존하는 나라들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내년 4월에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에 달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유럽, 러시아만 쳐다보고 있지만···

가스 값이 폭등한 가장 큰 이유는 유럽 가스 수요의 40%를 담당하는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공급을 줄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나지 않고 발트해를 관통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EU를 압박하는 중이다. 러시아와 유럽의 길목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그간 가스관 덕에 앉아서 돈을 벌었는데 러시아는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외신들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지렛대로 유럽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마저 내놓고 있다.

현재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EU 집행부도 가스 가격 급등에 대응하느라 쩔쩔매고 있는 상태다. 현재 가스 값은 유럽 내 상당수 인구를 ‘에너지 빈곤’ 상태에 몰아넣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를 회복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블룸버그는 “현재 유럽 각국 정부는 올겨울 날씨가 덜 추울 것만을 기대하는 처지”라며 “이들 정부는 가스 값 상승의 소비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공적 자금 지출을 늘려야 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英 10년물 국채 금리도 치솟아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는 이미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영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인 1.09%를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의 채권들 역시 인플레이션 우려로 수익률이 상승하고 있다.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의 마이크 리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가스 값 상승세가 너무 가팔라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가스 값이 더 오르면 유럽과 영국 산업체들이 셧다운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될 경우 상품 부족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속화할 수 있다.

이번 에너지 위기가 EU의 신재생에너지 드라이브에 대한 비판 여론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EU 소속 국가들이 앞다퉈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을 늘려라’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는 청정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EU 목표에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5개국 재무장관이 EU에 요구한 사항 가운데는 에너지 자립도와 국가별 에너지 다양화를 높이고, 탄소 가격에 대한 예측 가능성 역시 제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탈탄소’에 드는 비용이 아직 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쏠리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각국의 입장과 형편에 따라 분열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EU 집행위는 다음 주 각국이 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린 에너지에 대한 EU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각국이 비상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방안이 주된 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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