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지분 팔아야 할 기업만 709곳..외국자본 먹잇감 불보듯

이경운 기자 2021. 10. 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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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각 파고 규제에 숨죽인 기업
<하> 경영활동 발목잡는 공정거래법
제품 경쟁력 위한 수직계열화 중요한데..현대차 등 비상등
중견 그룹들은 신규 자회사 설립 어려워져 투자 손놓을 판
계열사 정보교환 못해 경영전략 난관..영업비밀 유출 우려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공정거래법 발전 방향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올해 말 시행을 앞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을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막자는 취지인데 일부 기업들은 계열사와의 거래가 원천 봉쇄될 수 있어 경영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무차별 고발로 인한 영업 비밀 유출을 야기하고 통상적인 정보 교환 행위까지 어렵게 해 경영 전략 수립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산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들을 대상으로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오는 12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상장·비상장 계열사 및 이들 회사가 50%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를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기존 법안이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 이상)에 대해서만 규제했던 것과 비교하면 규제 범위가 대폭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도 기존 265곳에서 709곳으로 2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이 기업들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국내 제조업 주요 기업들 다수가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직 계열화된 상황에서 그룹 내 협력이 활발한데 개정안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관련 거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법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총수 일가를 포함해 특수관계인 지분이 20% 미만이 되도록 주식을 대량 매각할 경우 회사 지배권이 약화돼 외부 세력의 투기적 공격에 기업 경영이 취약해지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변화가 불가피하다. 현대차(005380)그룹은 현대차와 기아(000270)를 필두로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012330)와 유통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086280)로 업무가 분할돼 있다. 이 가운데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2019년 기준 전체 매출 14조 4,745억 원 중 약 68%(공정위 대기업집단 현황 공시 기준 약 21.6%)에 달하는 9조 8,139억 원을 그룹 계열사들과의 내부 거래를 통해 올렸는데 현재 정몽구 명예회장(6.7%)과 정의선 회장(23.29%)이 지분 29.99%를 보유해 연말부터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 대상이 된다. 해결책은 두 사람이 지분 약 10%를 매각하거나 현대글로비스가 내부 거래를 줄이는 것인데 둘 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다. 현대차그룹 외에도 다수의 그룹사가 지분율 조정과 내부 거래 규제의 영향을 받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이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 부담을 지우면 그만큼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개정안이 도입되면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그룹사들에 더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19년 기준 국내 지주회사 163곳 가운데 126곳이 중견·중소기업인데 새 공정거래법 이후 해당 회사들은 사실상 새로운 자회사를 설립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개정안은 새로 편입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대한 의무지분율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 이상으로 보유하도록 강화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중견·중소 그룹사 입장에서는 사업을 뒷받침할 새로운 계열사를 설립하고 싶어도 비용이 증가해 신규 투자가 부담스러워 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서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에 악재가 된다고 우려한다. 개정안은 불공정거래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시 영업 비밀이라도 손해의 증명 산정에 필요한 경우 법원이 회사에 자료 제출을 의무 부과할 수 있도록 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자료와 생산공정 정보 등 중요한 영업 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최대한 법정 다툼을 피할 수밖에 없고 신고자 입장에서는 조그만 피해에도 소송을 남발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방지 차원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회사 간 정보 교환 행위를 규제하는 방안을 도입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개정안은 사업자 간 정보 교환을 통한 경쟁 제한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담합 유형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는 사업 활동 측면에서 기업의 정보 수집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경영 전략 수립을 위해서 이뤄지는 통상적 대화도 자칫 잘못하면 담합으로 여겨져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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