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코앞에 사상 최대 군용기 띄웠다, 중국의 노림수 4가지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위협이 심상치 않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총 149대의 중국군 전투기와 폭격기 등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했다. 지난해 9월 대만 국방부가 중국군의 ADIZ 침범 정보를 일반에 공개한 이후 최대 규모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 영문판은 “전쟁은 실제”라며 노골적으로 대만에 엄포를 놨다.
중국이 국경절(10월 1일)이나 대만의 건국 기념일(10월 10일) 전후로 대만해협에서 공중 무력시위를 벌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 만큼 대규모 작전을 펼친 적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중국의 군사적 우위를 각인시키는 연례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미국 CNN 방송은 5일(현지 시각) 중국 군용기가 나흘간 대만을 위협한 이유를 크게 네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 이유: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배에 대한 보복
CNN방송은 대만이 지난달 22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한 것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분석했다. 대만이 CPTPP 회원국으로 인정 받게 되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고수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국제 문제 전문가인 리오넬 패튼 스위스 웹스터 대학 조교수는 “대만이 CPTPP 가입을 신청한 이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위협이 급증했다”면서 “중국은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 받으려 할 때마다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해 억제해왔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은 대만이 CP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날 24대의 군용기를 보내 대만 ADIZ를 침범했다. CNN방송은 “중국의 공중 무력 시위는 대만에게 보내는 협박 메시지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 이유: 대만 침공 모의 훈련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벌어질 대규모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실전 훈련을 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군사 전문가인 칼 슈스터 전 미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대만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 공군 기지에서 다수의 전투기를 동원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실전 훈련 경험이 필수적”이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중국 전투기가 (경험치를 쌓기 위해) 대만 상공에 날아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군용기의 대만 도발 규모는 급증하는 추세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2019년에는 10여 대의 중국 군용기가 대만 ADIZ를 침범했는데 2020년에는 380대, 올해는 600대를 넘겼다.
◇세 번째 이유: 대만 공군 전투력 약화
대만의 공군 전력을 상세하게 평가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칼 슈스터 전 작전국장은 “중국은 전투기를 보낼 때마다 대만의 공중 위협 탐지 능력과 대응력을 테스트했을 것”이라면서 “대만 공군이 대응에 걸리는 시간, 전술, 공중 요격 절차 등 정보가 중국에 넘어갔을 수 있다”고 했다.
노후화 된 대만 전투기의 출격 빈도를 높여 대만 공군의 전투력을 낮추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주장도 있다. CNN방송은 대만 전투기 대부분의 연식이 30년 이상이라면서 중국 군용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격할 때마다 기체 수명이 빠르게 닳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호주 공군 장교 출신의 피터 레이튼 그리피스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대만이 전투력에 피해가 갈 만큼 전투기를 혹사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거리 전자 수단을 이용해 중국 군용기를 식별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 번째 이유: 대만 지지국에 대한 항의
중국의 대규모 공중 무력 시위는 대만 지지 국가들에 대한 항의 표현이란 주장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의 티모시 히스 선임 연구원은 “최근 미국 등 국가들이 대만 인근에서 해상 훈련을 벌인데다 영국의 대만 해협 구축함 파견, 일본 새 지도부의 (반중 성향의) 대만 정책 등이 중국의 군용기 시위 규모를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만 ADIZ 침범은 과거에도 특정 사건 직후 대규모로 일어나는 패턴을 보였다. 예컨대 지난 4월에는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대만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한 다음날 25대의 전투기가 대만 ADIZ을 침범했고, 6월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대만 해협 안정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 중국 군용기 28대가 대만해협에 나타났다.
◇일촉즉발의 양안 갈등
중국의 군용기 시위는 일단 소강 상태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6일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전날 중국군 Y-8 대잠기 1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대만 공군 초계기가 대응해 무전으로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대만 일대의 군사적 긴장 수위는 쉽게 낮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 군용기 시위가 한창이던 5일 ‘대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란 제하의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대만이 (중국에 의해) 무너지면 역내 평화와 민주동맹 체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대만의 민주주의와 삶의 방식을 지키고자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영문판은 같은 날 사설에서 “대만의 차이 총통은 재앙적인 결과에 겁을 먹고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대만 당국은 그들의 분리주의 시도가 막다른 골목에 달했다고 보고 상당히 겁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반(反) 중국 전초기지로서 조만간 중국 본토에 의해 전멸될 것”이라고 했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2016년 대만에 반중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이 출범하고 이듬해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 카드’를 꺼내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악화됐다. 올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도 대만과의 협력 수위를 높이며 중국과 대만의 대결 구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대만관계법 제정 기념일에 전직 미 의회 및 국무부·국방부 인사들의 대만 방문을 허가했고,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 G7·나토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명시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고 도발을 일삼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 2025년 대만 침공 역량 갖춘다”
양안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6일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은 2025년까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전면적 침략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2400억 대만달러(약 10조 2000억 원) 규모의 해공군 전력 증강 특별 조례를 심사 중인 대만 입법원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추 국방부장은 “내 군생활 40년 이래 가장 엄중한 시기를 맞이했다”면서 “2025년까지 중국은 (대만 침공에 들어가는) 비용과 소모되는 노력 등을 최소한으로 낮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중국은 (침공할) 능력이 있지만, 고려할 것들이 많아 당장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한·미·일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중국의 대만 ADIZ 침범이 무력 침공을 위한 준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후) 2022년이 핵심적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날 무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 병합한 예를 들며 “유사점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 3월에도 인도·태평양 사령관이던 필립 데이비슨 제독이 의회에서 중국이 6년 안에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다만,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 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 6월 중국이 당장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전했다. 컨설팅 회사 ‘바우어 그룹 아시아’의 대만 전문가 티파니 마 역시 FT에 “비상경보를 울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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