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향한 의심이 전세계 '인플레 공포' 키워
'올해 하반기'서 '내년'으로 늦춰
기준금리 인상·자산매입 축소 등
통화정책 시간표 바뀔지 우려도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부상했다. 우려를 촉발한 것은 중앙은행의 물가 판단 변화다. 중앙은행들은 물가 상승세가 점차 안정될 시점에 대한 전망을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늦췄다. 중앙은행들의 생각이 바뀌면 통화정책 계획도 변경된다. 전 세계 금융시장은 중앙은행들이 예상보다 빠른 ‘돈줄 조이기’에 들어갈지, 그 과정에서 실수가 없을지, 바뀐 물가 판단도 틀릴지 등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중앙은행을 향한 의심이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공포의 핵심이다.
물가 급등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판단은 여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일시적 요인이 진정되면서 하반기부터 서서히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판단이 ‘예상보다 길어질 듯’으로 바꿨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각각 1.8%, 1.4%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올해 2.1%, 내년 1.5%로 전망을 수정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지난 6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올해 3.4%, 내년 2.1%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달 올해 4.2%, 내년 2.2%로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한은과 연준의 물가 안정 예상 시점이 내년으로 늦춰진 것이다.
물가 안정이 목표인 중앙은행의 생각 변화는 올해와 내년 통화정책 시간표를 바꾼다. 한은은 금융 안정을 위해 지난 8월 주요국보다 빠른 기준금리 인상 행보를 시작했다. 물가에 대한 선제 대응도 금리 인상 근거가 됐다. 연준도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의 연내 시작 움직임을 내비친 상태다.
그런데 물가 때문에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한은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고, 연준도 테이퍼링 종료 시점을 내년 중순보다 앞당기면서 서둘러 정책금리 인상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들의 판단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물가 급등에는 공급 쪽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은 총수요를 조절하는 것이라 공급 쪽 물가 대응이 쉽지 않다. 금리를 올린다고 국제유가가 떨어지거나 반도체 수급 부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올해 물가 급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공급 쪽 병목 현상”이라고 언급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수요를 꺾는 금리 인상으로 물가 안정을 시도할 경우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에 악재가 된다. 현재 일부 전문가들이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나마 물가와 경기가 함께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물가 잡기에 급급해 중앙은행들이 자칫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게 되면 실제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 중앙은행들이 물가 판단에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것이 시장을 공포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예상 시점이 또 틀릴 가능성도 주시한다. 중앙은행들의 전망이 맞을 경우 내년에는 한국과 미국 모두 물가가 안정 목표인 2% 안팎 수준으로 내려간다. 코로나19 이전 오랫동안 이어진 저물가를 고려하면 ‘건강한 인플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너지, 원자재 등 공급 쪽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물가 또한 과거에 비해서는 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급 문제가 해결 되어도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면 ‘나쁜 인플레이션’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친환경 전환에 따른 ‘그린인플레이션’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도 변수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지난 5일(현지시각) 과거 인플레이션 위기를 언급하며 “이제 중앙은행들은 줄타기를 하면서 경제 자료, 공급망에 대한 질적 보고서,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대한 조사를 동시에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역사적 상황은 결코 완벽하게 반복되지 않으며 불완전한 지침을 주지만, 잘못된 조처에 드는 엄청난 비용의 예시는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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