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체제 경쟁'의 최전선 CPTPP 문제..어떻게 결론 날까

정인환 2021. 10. 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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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겨냥 TPP이 모태..중국-대만 동시 가입 신청
국영기업 규제 등 걸림돌..중국 왜, 지금 움직였나?
'하나의 중국' 비껴간 대만..가입 거부 명분 안돼
아·태 무역질서 재편 임박?..선택의 기로에 선 미국
지난 2019년 5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AP 연합뉴스

판이 커졌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중국과 대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시피티피피) 동시 가입 신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무한경쟁의 서막이다. 최후에 웃는 건 어느 쪽일까.

지난달 16일 밤 중국이 갑작스레 가입 신청 사실을 공개하자 전세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피티피피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이 모태다. 당시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2015년 4월 이 협정의 의미에 대해 “한척의 항공모함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당시 중국 견제를 위해 협정 가입국 간 무역질서 바로 세우기를 목표로 삼았다.

실제 모두 30개 장으로 이뤄진 협정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협정 17장은 국가가 50% 이상의 지분 또는 의결권을 확보한 ‘국영기업’(SOEs)에 대한 연례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등으로 인한 공정경쟁 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 경제 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목록에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기업이 모두 124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중국 중앙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49개를 포함해 국영기업은 82개에 이른다. 국영기업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협정은 이밖에도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18장)·노동권 보장(19장)·환경보호(20장) 관련 규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이 탈퇴하면서 남은 국가들끼리 후속 협정을 체결했지만, 무역질서 관련 규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피티피피 가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은 중국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왜, 그것도 이 시점에 가입 신청을 했을까? 일부에선 가입 신청 전날 미국이 영국-호주와 함께 영어권 국가 안보동맹인 ‘오커스’ 결성을 발표한 게 ‘방아쇠’가 됐다고 지적한다. 중국 쪽은 관련성을 즉각 부인했다.

다양한 해석 속에 한가지 분명한 게 있다.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지난달 23일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시피티피피 가입 신청 자체로 중국이 잃은 건 없는 반면 얻을 건 많다”고 짚었다.

먼저 ‘명분’이다. 시피티피피 가입 신청을 통해 중국은 ‘규칙에 기반한 무역질서’를 중시한다는 점을 안팎에 과시할 수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속에 그간 중국은 자국을 ‘개방적인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미국을 ‘이기적인 보호무역의 대표주자’로 포장해왔다.

가입 신청 만으로 시피티피피 내부를 흔들 수 있다는 점도 중국에겐 나쁠 게 없어 보인다. 이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중국의 가입을 환영하고 나섰다. 반면 순회 의장국인 일본과 호주·캐나다는 대만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존 회원국 내부에 균열이 생기면, 협정 자체가 취약해질 수 있다.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으로선 ‘전략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시피티피피 11개 회원국 가운데 6개국이 대외무역의 20% 이상을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 중국의 가입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면, 양자 무역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국과 불화 속에 무역 보복을 당하고 있는 호주·캐나다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바다. ‘반중국 전선’ 구축을 내걸고 태동한 시피티피피가 되레 중국한테 선택을 강요당하는 꼴이 됐다.

이제 대만이 등장할 차례다. 대만은 다양한 양자 접촉과 관련 법 사전 정비 등 시피티피피 가입 준비에 상당 기간 공을 들여왔다. 특히 가입 신청 때 국가명 대신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구역’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만은 지난 1990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가트) 가입 신청 때도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중국은 대만의 가트 가입 신청 당시에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트 협정문 제33조가 “대외 상거래 관계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가지는 독자적 관세영역”도 협정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트 쪽은 대만의 가입 문제를 다룰 실무팀이 꾸려진 1992년 “회원국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 대만(차이니스 타이베이)의 가입은 중국의 가입 이후에나 최종 확정될 수 있다”고 대만 쪽에 통보했다. 가트 체제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로 재편됐다. 대만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 143번째 회원국이 된 지 21일 뒤인 지난 2002년 1월1일에야 144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가트 가입 신청 만 12년 만의 일이다. 대만의 가트·세계무역기구 가입 협상 수석 대표는 국제 통상법 전문가로 당시 행정원 경제부 무역조사위원 겸 국제경제기구 수석 법률고문이었던 차이잉원 현 총통이다.

지난달 22일 대만의 시피티피피 가입 신청 직후 중국은 다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웠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세상에 중국은 하나뿐이고, 대만은 중국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며 “특정 국가가 대만과 당국 간 왕래를 하거나, 대만이 당국 간 성격의 협상이나 조직에 참여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주펑롄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도 29일 “대만이 세계무역기구에 별도관세구역으로 참여한 것이 (시피티피피 가입의) 선례가 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신규 가입 절차를 규정한 시피티피피 부속 문서를 보면 중국 쪽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시피티피피 역시 신규 가입 자격을 “가입을 원하는 경제체”로 규정해, 국가가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는 “협정에 부속된 다자간 무역협정”과 “복수국 간 무역협정 가입”에 대해서도 협정 12조가 규정한 가입 자격을 적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시피티피피는 지난 2018년 12월 발효와 함께 세계무역기구에 통보된 다자간 무역협정에 해당한다. ‘하나의 중국’ 원칙만으론 대만의 시피티피피 가입 반대를 밀어붙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문제는 20년 전과 견줘 중국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당시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경제 규모와 국제 정치적 위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니 중국-대만의 시피티피피 가입 문제는 달라진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모두 가입이 성사되는 건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만만 가입시키는 건 중국의 보복을 부를 게 하다. 중국만 가입시킨다면,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둘 다 가입시키지 않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다. 시피티피피 신규 가입은 복잡한 과정이고, 가입을 위한 협상을 개시할 지 여부에서 최종 가입 결정까지 이르는 매 단계마다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이뤄져야 한다. 결론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란 뜻이다.

최대 변수는 미국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미국 일각에선 시피티피피에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가입 신청 이후엔 이같은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여론은 집권 민주당 내부에서도 만만찮다. 설령 복귀하더라도 의회 비준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중국이 자신있게 선공에 나섰다.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미국이 조만간 복귀할 것이란 확신이 선다면, 기존 회원국들의 셈법도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없는 동안, 중국의 힘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먼저 가입하는 쪽은 ‘거부권’도 쥐게 된다.

미국의 부재 속에 자국을 겨냥해 시작된 시피티피피에 중국이 가입한다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무역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패권의 축도 이동할 것이다. 미국으로선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바야흐로 시피티피피가 미국과 중국 간 ‘체제 경쟁’의 최선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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