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노회찬과 곽상도, 부끄러움에 관하여
지난 주말,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삶을 다룬 영화 <노회찬6411>을 시사회에서 봤다. 너무나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진보 정치인 노회찬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노회찬의 죽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부끄러움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영화 마지막에 스크린에 흐르는 유서에 그는 이렇게 썼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4천만원을 받았다.…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불법’ 정치자금 4천만원을 받은 걸 스스로 용서하지 못해 세상을 뜬 그를 두고 <제이티비시(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는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입니다.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순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가슴이 저린 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 부끄러움을 요즘 정치권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화천대유에서 아들이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곽상도 의원은 “나는 관여한 적이 없다. 그런 수익을 만들어준 게 문제가 되는 거고 그건 이재명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반격했다.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에선 “(제 아들이) 퇴직한 사실을 저도 몰랐다. 회사가 그런 식으로 (엄청난 규모의 퇴직금을) 지급했던 자료가 있기 때문에 제 아들에게만 특혜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그가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가 정부의 미술작가 지원 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걸 두고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고 줄기차게 비난해온 데 대해 한마디 언급이라도 있어야 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한 걸 ‘뻔뻔하다’고 부른다. 뻔뻔한 이가 어디 곽상도뿐일까.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이준석 대표에게 보냈다는 문자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곽 의원 아들의 퇴직금 규모를 떠나서 그 퇴직금이 범죄나 화천대유 불법과 관련이 있나. 아버지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타당한가”라고 따지는 그의 모습에서, 그간 정부 여당을 향해 날린 수많은 공격의 화살은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인 조수진 의원은 재산 신고를 누락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적이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후보 등록 때 18억5천만원을 신고했는데, 몇달 뒤 공개된 자료엔 30억원으로 재산이 크게 불었다. 후보 등록 때 실수로 예금 6억원과 채권 5억원을 빠뜨렸다는 게 그의 해명인데, 더 놀라운 건 조 의원의 ‘반격’이었다. 그는 “민주당의 수많은 의원들에게서 전세권 누락과 부동산 미신고, 예금·비상장주식 미신고 등 다양한 (재신 신고 회피) 문제가 보인다”고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은 축구 격언만은 아니다. 한국 정치에선 상대의 허물을 공격해 내 치부를 가리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활로를 뚫는 전술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성찰하는 부끄러움의 감정은 설 자리가 없다.
노회찬도 그랬으면 어땠을까. 훨씬 많은 돈을 재벌이나 건설업자에게 받고도 죄의식 없이 여의도를 활보하는 정치인은 수없이 많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공격하면서 ‘선거에 쓰려고 몇천만원 받은 게 그리 큰 죄인가’라고 항변했다면, 지금 우리 곁에서 노회찬의 모습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왜 노회찬에겐 부끄러움이 자신을 찌르는 예리한 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때 “진보 정치인의 이중성이 애잔하다”고 나름 추모의 말을 했던 이가 곽상도 의원이다. 보수야말로 진보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걸 그는 이제 깨닫고 있을까.
과거 어느 때보다 혼탁하기 이를 데 없는 대선이다. 노회찬이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삼겹살 불판을 바꾸지 않았더니 새까맣게 타다 못해 이젠 악취가 진동한다고 말할까. 의원직을 걸고 삼성과 검찰에 맞섰고(국회의원직은 이럴 때 던지는 것이다), 6411버스에서 투명인간 같은 비정규직과 함께 했던, 누구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 노회찬이 그립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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