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앞둔 노부부의 지각 결혼식..뜨거운 입맞춤에 미국이 열광했다

정지섭 기자 2021. 10. 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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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 못올리고 77년 해로한 아이오와 부부
요양시설에서 뒤늦은 결혼식 마련해줘
웨딩드레스에 군 제복 입고 정열적인 입맞춤

모든 키스신은 아름답고 설레는 법이다. 77년을 해로하고 100세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인생의 황혼녘을 함께 보내고 있는 부부의 키스신이라면 얼마나 따뜻하고 그윽하겠는가. 변변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생의 반려자로 살아온 미 아이오와주의 로이스 킹(98)과 프랭키 킹(97)의 지각 결혼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강산이 여덟번 바뀔동안 함께 하면서 두 자녀와 네 손주, 여러 명의 증손주를 둔 이 커플은 결혼식은 급하게 올리는 바람에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마련할 엄두도 못냈고 변변한 혼인 사진도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백세를 코앞에 둔 프랭키 킹(왼쪽)과 로이스 킹 부부가 77년만에 찍은 웨딩사진. 20대 커플 못지 않은 달달함이 느껴진다. /세인트 크루아 호스피스 페이스북

두 사람은 2차 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4년 9월 16일에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 로이스는 짧은 휴가를 마친 뒤 군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주변에 알리고 식을 준비할 시간은 불과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평생 한 번 뿐인 순간을 사진에 담을 촬영기사를 섭외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공군 중령으로 예편한 남편 로이스는 기업과 학교에서 일했고, 아내 프랭키는 치위생사와 꽃장식가로 일하며 두 자녀를 키웠다.

결혼한지 77년이 지난 뒤에야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프랭키 킹 할머니가 꽃다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세인트 크루아 호스피스 페이스북

둘은 함께 나이들었고, 요양시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아이오와주 올웨인의 크루아 호스피스에서 킹 부부의 77번째 결혼기념일에 맞춰 제대로 된 결혼식을 마련해줬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공군 제복을 입은 신랑의 달콤한 사진이 소셜미디어와 미 언론을 통해 퍼지자 누리꾼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고 있다. 호스피스 직원들은 뒤뜰을 이들의 신혼기였던 1940년대 스타일로 꾸몄고 색소폰과 기타를 곁들인 1940년대 히트곡들을 연주했다. 직원들은 직접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구입해서 입혔고, 신랑은 현역 복무 때 입었던 공군 제복을 입었다. 이 부부의 딸인 수 빌로도는 아버지를 앉힌 다음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고, 신부복을 입은 어머니를 부축해 뒷걸음질로 데려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 사진은 77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인트 크루아 호스피스 페이스북

딸은 어머니를 뒤돌아서게 한 뒤 “당신의 신부를 볼 준비가 됐냐”고 물으며 아버지의 눈을 가린 손수건을 벗겼다. 빌로도는 “신랑 신부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피부에 주름이 가득한 두 사람의 입맞춤은 청춘남녀의 그것에 못지 않게 뜨겁고 황홀했다. 이 사진을 포함한 당일 식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자 1만800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아이오와 레지스터 등 지역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이날 뒤늦게 제대로 열린 예식에서 “77년동안 함께 해서 가장 좋은게 뭐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랑과 신부는 각각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고 이들의 딸은 웃으며 말했다. “프랭키를 내 곁에 둔 거죠.”(신랑 로이스) “우리 아빠가 말씀하신 것처럼 늘 이 말을 생각해요. ‘주님 저에게 인내심을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요.’”(신부 프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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