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극단적 단식 뒤 '폭식'..20대 여성이 위험하다
10명 중 9명 여성..20대 여성 '최다'
극단적 마른 몸 원하는 '프로아나'
보디 프로필 촬영 유행 원인 꼽혀
"여성 몸의 왜곡된 시선 바뀌어야"
직장인 ㄱ(28)씨는 지난해 7월 서른 살이 되기 전 ‘누가 봐도 예쁜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보디 프로필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70일간 탄수화물을 극도로 억제하는 고강도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한 끝에 53㎏(체지방률 20%)에서 48㎏(11%)로 감량에 성공했다. 기분좋게 촬영을 마쳤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폭식증이 따라왔다. ㄱ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장·냉동고에 보이는 탄수화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요거트론 성에 차지 않아 빵과 떡을 먹고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반찬과 밥을 밀어 넣었다. 이것도 부족할 땐 집 앞 편의점에 나가 간식거리를 사와 또 먹었다. ㄱ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뇌가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것처럼 폭식을 조절하지 못했다”며 “정신없이 먹고 난 뒤 식탁에 놓인 쓰레기 봉지를 보면 우울감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ㄱ씨는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1∼2주 간격으로 정신상담을 받아야 했다.
직장인 ㄴ(31)씨 역시 보디 프로필 촬영 이후 생긴 폭식증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는 경험을 했다. 프로필 촬영을 위해 하루 1000kcal만 먹고 4시간씩 운동하며 틈틈이 휴대폰에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뒀다. 주로 빵이나 새로 출시된 과자와 같은 탄수화물이었다. 촬영이 끝난 뒤 소위 말해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빵과 치킨 등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쉬지 않고 먹었다. 실컷 먹은 뒤면 죄책감에 시달렸고, 다음날 굶고 운동을 한 뒤 다시 폭식하기를 6개월이나 반복했다. ㄱ씨의 다이어트와 폭식은 지난해 10월 만성 백혈병 의심 진단을 받고나서야 끝이 났다. ㄴ씨는 <한겨레> 전화 인터뷰에서 “먹고 나면 운동을 해야한다는 강박감과 죄책감에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며 “발병으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빵에 집착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ㄱ씨와 ㄴ씨처럼 극단적인 식이조절로 인한 신경성폭식증이 늘고 있다. 질병분류정보센터(KOICD)를 보면 신경성폭식증은 몸무게 조절에 대한 과도한 선입견과 반복적 과식발작이 특징인 일련의 증후군으로, 과식과 구토의 양상을 보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마른 몸을 선호하는 ‘프로아나’(pro-ana)와 보디 프로필 촬영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신경성폭식증 성별·연령별 진료인원’을 보면, 2016년부터 2020까지 최근 5년간 신경성폭식증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1만641명으로, 2016년 2010명에서 2020년 2444명으로 약 22% 늘었다.
더욱이 신경성폭식증 환자 가운데 대다수는 여성이 차지했다. 전체 신경성폭식증 진료인원 가운데 여성은 9903명으로 93.1%를 차지해 남성(738명)과 견줘 압도적으로 많았다. 성별·연령별로 보면 20대 여성이 44.1%로 가장 많았고 30대 여성(21.4%), 40대 여성(11.4%), 10대 여성(8.4%)이 뒤를 이었다. 폭식증 환자 대다수인 85%가 10~40대 여성인 것이다. 이 가운데 20대 여성은 2016년 818명에서 2020년 1137명으로 약 40% 증가해, 4년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다른 연령대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남인순 의원은 “신경성폭식증은 여성환자가 93%, 특히 10~40대 여성이 85%를 차지하는 지극히 성별화된 질환”이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어 “우울과 불안, 공황장애와 함께 무월경증, 탈수, 위장장애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해 심신의 건강을 손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해로운 다이어트 산업과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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