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 15만원' 보이스피싱 알바가 구직사이트에.."단속 좀 하라"

김성진 기자 2021. 10. 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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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건당 15만원 말씀드렸잖아요. 하루에 최소 2~3건 정도 일은 저희가 보장해드릴 겁니다"(보이스피싱 일당이 지난달 28일 대학생 이모씨에 보낸 카톡 내용)

대학생 이씨(22)는 용돈을 벌기 위해 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수상한 돈벌이 제의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쯤 잠을 자던 이씨에게 스스로를 '금융회사'라 소개하는 A회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A회사는 "고객이 빌린 돈을 받아오면 된다"며 "받은 돈은 주변의 자동인출기(ATM)로 가 회사 재무팀 계좌로 입금하라"고 했다. 고객을 만나러 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돈을 한번 전하면 이씨는 수수료 15만원을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이 8720원인 것을 고려하면 하루 8시간 일한 일당(6만9760원)을 2.1일 치 받는 셈이다.

A 회사는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오면 건당 15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A 회사는 회사가 미덥잖은 이씨에 사업자등록증도 보여줬다. A 회사가 제공한 사업자등록증 사진 속에서 사업자등록번호와 본청 소재지 중 일부는 가려져 있었다. /사진=이씨 제공


잠결에 이씨는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상했다. 이씨는 "20대 초반에 아무 경력 없는 알바생을 어떻게 믿고 회삿돈을 전달을 맡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회사는 이런 의심을 예상한듯 했다. 다음날 이들은 메신저로 사업자등록증 사진을 보여줬다. 사업자등록증에서 A 회사는 정말 대표자 이름, 사업장 소재지가 다 적혀있었고 사업 종목도 '금융중개업'이라 돼 있었다. 사업자등록번호는 일부가 가려져 조회가 불가능했다.

고등학교 동창 B씨(22)가 돕지 않았다면 이씨는 미끼를 물 뻔했다. 동창은 머니투데이의 '"입금 1번에 15만원" '꿀알바' 하다가…결국 경찰서로'란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이씨는 "기사 속 보이스피싱 일당이 전달 한 건당 수수료 15만원을 준 것부터 많은 면이 일치하더라"라며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나도 속아서 피해금액을 몇번 전했을 것 같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하려 '위장취업' 결심했지만...경찰의 답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이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인 A 회사에 '위장취업'할 생각을 했다. 이씨는 "피해자를 만나 '보이스피싱이에요'라 말하고 싶었다"며 "그분께 피 같이 소중한 돈이지 않겠나"라 말했다.

하지만 경찰에 알리지 않고 A 회사에 취업하는 건 무모한 짓 같았다. 이씨는 "해코지당할까 걱정됐다"며 "또 A 회사가 나와 내 부모님의 휴대폰 번호, 내 주민등록번호까지 알려달라고 하더라. 개인정보 유출도 걱정됐지만 내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씨는 경찰에 'A 회사가 구직사이트에서 전달책을 고용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받아낸다'고 신고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찰이 나서기는 어렵다"는 말 뿐이었다. 이씨의 신고만으로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이 나서기 어렵다는 논리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일당은 보통 중국에 있으니 잡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돕지 않자 이씨도 결국 위장취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많이 아쉽다"며 "결국 누군가 나를 대신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돈을 일당에 전했을텐데, 힘들게 버셨을 돈을 잃으신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달책 알바로 징역" 피해 사례 수두룩...전문가 "단속 나서야"
온라인 구직사이트 알바몬은 2018년 공지글을 올리고 "단순한 현금 수금 또는 전달 심부름 아르바이트는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을 전달하는 역할일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이 같은 공지글에 이용자들은 "징역 1년 2개월형을 받았다"는 등 피해 사례를 공유했다./사진=알바몬 홈페이지 캡쳐.
보이스피싱이 늘며 전달책으로 이용당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최민우씨(가명·21)는 지난해 11월 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C은행 채권추심단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C은행은 "기업이 대출받은 돈을 회수하면 된다"고 했고 최씨는 건당 15만원을 받아 한달 동안 22번, 3억3000만원의 돈을 받아 전달했다. C은행도 보이스피싱 일당이었다. 최씨는 지난 1월 경찰에 입건됐다.

이씨와 최씨처럼 보이스피싱 일당이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이력서를 보고 고액알바를 제안하는 사례가 많다. 이에 알바몬은 2018년 공지를 올려 "단순한 현금 수금 또는 전달 심부름 아르바이트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전달하는 역할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공지에도 전달책으로 이용당하는 사례는 속출한다. 게시글에 달린 100여개 댓글 중에는 "1년 2개월 징역을 살았다" "구치소에 두번 구속됐다"는 글도 있었다. 이씨도 A회사의 알바 제의를 받은 후 3일이 지나 다른 금융회사로부터 비슷한 제의를 받았다. 이씨는 "이력서를 공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일각에선 구직사이트가 단속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정웅 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구직사이트들이 불량회사를 '걸러낸다'고 하지만 실상은 키워드 몇개를 필터하는 수준"이라며 "수시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구직자들을 향해서도 "시급이 너무 높다면 의심해야 한다"며 "또 반복돼 올라오는 구인 광고는 회사 프로필과 알바 경험담을 꼭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이어 "자격 요건이 낮은데 시급이 높고,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라 홍보하면 일차적으로 의심해 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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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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