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g 몸으로..'된장잠자리' 2천km 비행 미스터리 풀렸다

조홍섭 2021. 10. 6. 15: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순풍 타고 인도양 횡단..바람 경로 분석해 가능성 확인
2000km 닷새 만에 주파.."바람 선택하는 능력 있을 것"
무게 0.3g 몸길이 5㎝의 작은 동물이지만 해마다 2000㎞가 넘는 인도양을 2번씩 건너는 된장잠자리는 장거리 이동에 최적화한 몸을 갖췄다. 바실리 모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된장잠자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잠자리이지만 지구촌을 떠도는 방랑자로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먼바다를 항해하던 선박에 떼 지어 앉거나 외딴 섬에서 발견돼 바다를 건너다니는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인도에서 430㎞ 떨어진 몰디브는 물이 고이지 않아 번식할 수 없는 산호섬이지만 마치 철새처럼 해마다 가을과 봄 수백만 마리의 된장잠자리가 찾아온다. 이 나라 생물학자 찰스 앤더슨은 2009년 인도와 몰디브, 아프리카에 이 잠자리가 나타나는 시점과 선박에서의 관찰 결과 등을 종합해 된장잠자리가 인도양을 건너 해마다 인도와 동아프리카 사이를 왕복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잠자리, 1만4000~1만8000㎞ 바닷길 오간다).

이동 중에 무리를 지은 된장잠자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잠자리가 어떻게 이런 대장정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된장잠자리의 생리적인 비행능력과 아프리카와 인도 사이의 기상학적 바람 모델을 이용해 대양을 건너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람 도움 없이는 못 건너

최근 초소형 위치 추적장치가 개발돼 동물의 장거리 이동 연구가 활발하다. 그러나 몸무게가 1g도 안 되는 곤충에 무얼 부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요한나 헤드룬드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가벼운 곤충의 장거리 이동을 알려면 오히려 바람의 경로를 분석하는 것이 유력하다는 데 착안했다. 해마다 가을철 계절풍은 인도에서 동아프리카 쪽으로 불고 봄에는 반대로 아프리카에서 인도로 향한다. 그동안의 관찰 결과 된장잠자리의 출현 시기도 바람 부는 시기와 일치한다.

헤드룬드는 “이번 연구로 된장잠자리가 인도양을 횡단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몸에 비축한 지방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고 특정 시기에만 부는 순풍을 만나야 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인도 북서부에서 12월 부는 바람의 고도별 경로. 된장잠자리가 이 경로를 따라 동아프리카로 이동한다. 요한나 헤드룬드 외 (2021) ’생태학과 진화론 최전선’ 제공.

인도양을 건너는 가장 가까운 경로는 인도 북서부와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오만 사이로 직선거리는 2000㎞가 넘는다. 논문을 보면 잠자리가 날개를 계속 치며 비행한다면 불과 4시간 반이면 몸에 비축한 에너지가 고갈된다.

결국 잠자리는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언제 어느 높이에서 부는지 알아야 한다. 운 좋게 순풍을 타면 잠자리가 인도에서 동아프리카로 가는 데는 127시간(5.3일), 봄에 인도로 갈 때는 55시간(2.3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바람 경로를 조사해 보면 바람이 늘 비슷한 세기와 방향으로 부는 것도 아니어서 잠자리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확률은 아프리카로 갈 때 15.2%, 인도로 갈 때 40.9%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된장잠자리가 대륙을 건너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도에서 출발해 몰디브에 도착한 잠자리의 동위원소를 분석한 다른 연구를 보면 직선거리는 430㎞인데도 실제 비행한 거리는 200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장거리 여행이 순탄치 않아 중간 기착지에서 거의 생리적 한계에 도달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된장잠자리가 고도로 장거리 이동에 적응한 종이어서 적당한 바람을 선택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며 “어떻게 순풍을 찾는지는 흥미로운 후속 연구 과제”라고 논문에 적었다.

된장잠자리의 장거리 이동을 돕는 일등공신인 바람이 부는 양상이 기후변화로 바뀌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오랜 진화과정에서 터득한 이동 능력도 기후변화로 무력해질 수 있다. 연구자들은 “된장잠자리가 크게 의존하는 순풍을 만날 기회의 창은 단기간에만 열리는데 기후변화로 바람 양상이 달라지면 그 기회를 놓치기 쉽다”고 밝혔다.

같은 경로 이동 비둘기조롱이 먹잇감?

헤드룬드는 “무게가 겨우 0.3g인 잠자리가 어떻게 2000㎞가 넘는 대양을 건너는지 미스터리가 거의 풀려간다”며 “동물의 크기를 고려할 때 된장잠자리는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최장거리 이동동물인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와 뉴질랜드 사이 1만 1680㎞를 비행해 몸길이(40㎝)의 2900만배를 이동하는 셈이지만 몸길이 5㎝인 된장잠자리는 그 5000만배 거리(2536㎞)를 이동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연구로 드러난 인도양 횡단 바람길을 비둘기조롱이나 뻐꾸기 같은 철새들도 같은 시기에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무선추적장치를 부착해 확인한 비둘기조롱이의 인도양 횡단 경로와 고도(500m)가 된장잠자리의 최적 통로와 일치했다“며 “비둘기조롱이가 된장잠자리를 먹이 자원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동아프리카로 이동하기 직전 인도에서 떼를 이룬 비둘기조롱이. 디베옌두 애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된장잠자리는 유럽과 극지방을 뺀 전 세계에 분포하는데 모든 개체가 단일한 종이어서 장거리 여행을 통해 집단이 서로 뒤섞이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된장잠자리의 이동실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150∼400㎞ 거리인 발해만을 된장잠자리떼가 하루에 이동한 사실이 보고되기도 했다.

된장잠자리는 장거리 여행에 적응해 날개 표면이 주름져 뜨는 힘을 늘리고 날개를 번갈아 치면서 비행 피로를 줄이는가 하면 에너지가 적게 드는 활공에 적합하도록 뒷날개가 넓고 가슴근육이 매우 발달해 있다. 또 폭풍 등 계절풍을 타고 고공에서 빠르게 이동하며 우기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웅덩이를 이용해 다른 잠자리보다 짧은 40∼60일 만에 애벌레의 변태를 완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 논문: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DOI: 10.3389/fevo.2021.69812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