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깊은 웹툰도 있다..구아진 작가의 한국형 오컬트 '미래의 골동품 가게'

유경선 기자 2021. 10. 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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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이 어엿한 콘텐츠 장르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지만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 장르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새삼 묻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형 오컬트이자 판타지 스릴러인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무속과 관련된 웬만한 동양 고전을 충실히 담고 있다. 그림은 치밀하고 섬세하다. 메시지는 선과 악, 인간사와 세상사의 원리와 이치를 고민하게 한다.

구한말부터 현대까지 200여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이 작품은 근현대사를 악귀의 준동과 그로부터 인간사를 구하려는 ‘바리 만신’ ‘연화 만신’ 일동 간 대립으로 그려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의 라스푸틴’ 진령군을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 ‘이매신’이다. 조선 말기 왕가가 무당에게 마음을 뺏겨 호화 굿판을 벌이고 왕실 재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도 작품에 등장할 예정이다.

구아진 작가(36)가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첫 시작은 ‘스릴러 같은 동화를 써보자’는 마음이었다. 이야기는 남쪽 먼 바다 해말섬에서 출발한다. 해말섬 아래에는 땅의 목숨줄과 같은 ‘지맥’이 있다. 천년 세월을 산 악귀 ‘백면’은 이 섬에서 산 사람을 먹고 자란, 원한·분노의 총체 ‘천년고’를 키운다. 천년고가 땅을 파고 들어가 지맥을 건드리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다. 인간사를 멸절시키겠다는 의지로만 살아온 백면과 악귀들의 숙원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만신 연화와 칠성이 해말섬에 터를 잡았다. 평생을 이 섬에서 바치며 백면의 계획을 가까스로 잠재우고 있다. 그 사이 연화의 손녀 ‘미래’가 태어난다. 연화의 스승인 ‘바리 만신’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몇 대가 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는 ‘골동품 가게’에서 지맥을 지킬 유일한 방법 ‘명부록’을 찾아 섬으로 돌아와야 한다.

시즌1 연재가 지난 3월 끝났고, 최근 시즌2 연재가 재개됐다. 구 작가는 시즌1 후기에서 시즌8까지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쓰기 전까지는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이야기”라며 “외로운 섬의 외로운 소녀 이야기를 써보자고 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첫 구상은 2009년이었다.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지나오면서 세상에 이야기를 내놓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구아진 작가. 네이버웹툰 제공


‘이 작품 안 본 사람 없게 해달라’는 게 독자들의 반응이다. 독자들이 특히 열광하는 부분은 스토리와 그림의 깊이다.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을 능가할 정도로 등장인물과 서사가 탄탄하고, 작가의 무속 분야 이해도와 엄청난 자료조사량이 감탄을 부른다. 웹툰이 아니라 옛 고전을 본다는 착각이 인다. 구 작가는 악귀들의 악랄함을 그림으로도 소름돋게 묘사해냈다. 매회 머리에 적힌 ‘충격적인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임산부·노약자·심약자는 감상에 주의를 부탁한다’는 문구는 괜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구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접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말했다. 그는 “시간이 멈춘 고택에서 신부 복장을 하고 유령처럼 존재하는 음산한 미스 허비샴, 뭘 해도 불쌍한 피프, 사랑스러운 삼촌, 언제나 손에 피가 묻은 것 같은 공포스러운 살인자,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을 무시무시한 비밀”에 반했다며 “어린 제 영혼을 송두리째 홀려버린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이때 싹텄다.

스릴러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구 작가는 “모든 훌륭한 이야기에는 읽는 이를 근심하게 하고 조마조마하게 하는 스릴러의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코프가 포르피리와 처음 마주하는 장면은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합니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어떻고요? 불길한 마녀와 죽음의 예언들이 우글거리는 호메로스는요? 108개의 겁난으로 가득한 수호지나 서유기에 스릴러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인생에도 무서운 뭔가는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야기 역사상 가장 웃기는 만담 콤비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조차 그랬습니다.”

삶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가 스릴러라는 생각도 덧붙였다. 그는 “삶은 늘 예측할 수 없고, 우리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고난으로 내던져지기도 한다”며 이것이 자신의 체험과 닮았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기회가 오면 스릴러 장르를 고려하게 된다”고 했다.

무속을 다룬다는 작품의 특성상 사람의 본성, 악함과 선함이 주로 이야기된다. 이야기 중에는 세상사와 인간사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이해가 빛난다. 악귀에게 영혼을 빼앗겨 마구잡이로 사는 이들을 가리켜 만신은 “부처님이 와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부류가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자포(自暴)하고 자기(自棄)하는 자들”이라며 “그들은 사람 중 가장 불통하여 누구도 도울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연화는 사람의 빈틈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것이 악귀의 속성이라고 말하며 “사악한 악귀들은 그런 것만 보고, 그런 것만 찾고, 그런 것만 공격하는 법”이라고도 한다.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 등장하는 ‘이매신’의 모습. 네이버웹툰 제공


죽어서 창귀가 된 이후에도 인간사를 망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매신은 연화에게 재차 파멸당한다. 연화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온갖 주술로 무장하고 자신만만했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망각하고 있다가 다시 최후를 맞는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죽었더라?”라며 당황하는 이매신 앞에 연화는 “죽음은 육신이 겪는 것. 육신이 사라진 귀혼 백은 육신의 죽음을 망각해버리기 십상이고, 생전에 아무리 용한 무당이라 하여도 죽음 앞에선 별반 다를 바도 없는 것이지”라고 조용히 일갈한다.

구 작가의 오랜 독서력이 작품에서도 힘을 썼다. 그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은 주역”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화엄경, 금강경, 예기, 대학, 중용 등 고전과 천예록, 호산외기, 어우야담, 청구야담, 숙향전 등 우리나라 야화들”이 참고됐다. 구 작가는 “논픽션 중에서는 책 제목에 무(巫)자만 들어간다 싶으면 찾을 수 있는 건 다 읽었다”고 했다.

무속을 오래 탐구한 구 작가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귀신이니 요괴니 하는 것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서도 “사람의 행동이나 신념이 귀신이나 요괴의 형태로 되돌아올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수많은 인과의 총합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귀신도 요괴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 작가는 한·중·일 간 무속과 민간신앙의 차이가 “매우 분명하다”고 봤다. 중국은 “우아하고 신비로우나 허황되고 과장된 면이 있으며, 종교화가 되어선 안 될 것이 종교화된 부분이 있다”며 “예를 들어 수은을 섭취해 신선이 된다든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단순하고 분명한 매력이 있으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행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구 작가가 본 한국의 무속신앙은 어떨까. 그는 “불교든 역학이든 무엇이든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민중화되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예는 불교 선종의 조동종이라는 일파를 말했다. “중국에서 조동종은 비밀스러운 신비주의이고, 일본에서는 극한의 수행법을 강조하는 고통의 불교가 됐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불합리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사상적 수단이며, 그런 권력에 신음하는 민중을 위로하는 민간신앙이기도 한 것”이라고 했다.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 등장하는 만신 ‘연화’. 네이버웹툰 제공


이는 작품에서 드러난 작가의 역사관과도 이어진다. 작중에는 바리 만신이 조선 말기 나라의 어지러운 상황을 일컬어 “조선의 사대부들이 서푼짜리 붓질로 사단을 희롱했다” “학문의 도를 이룬 서얼이나 양인, 백정이 국정을 논하는 것을 마치 역천의 일인 양 꾸며댔다” “나라의 도가 개똥밭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라에서 받은 것 하나 없으면서 위기 때면 분연히 일어서는 이들은 지금도 저 풀밭의 꽃들만큼이나 많다”고 했다.

구 작가는 “조선의 엘리트 문화, 이른바 조선 성리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공자·맹자와 주자를 팔아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사유화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엘리트 양반들의 역사를 보면 아주 선하다 하는 축도 그저 개나 고양이를 대하는 동정심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정도”라며 “자신들의 이권에 조금이라도 도전했다가는 가차 없는 응징으로만 대응했다. 공맹을 자신들의 창고지기로 만들어버린 셈”이라고 했다.

시즌1에서는 해말섬의 비밀부터, 미래가 ‘명부록’을 찾아 뭍에 있는 ‘골동품 가게’로 떠나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거대한 프롤로그에 가깝다. 시즌2에 대해 구 작가는 “캐릭터 간의 인연과 화학작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것, 미래의 성장과 변화를 이야기에 조화롭게 녹여내는 것”에 집중했다고 했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가 중국에서도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것에 대해 구 작가는 “다양한 국가 독자들이 보고 계시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쁘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 구 작가는 “곧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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