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된 학교 개축 사업이 '586운동권 빨대꽂기'라고요?"
익명단톡방서 미확인 정보로 "반대"
서울교육청 "내년부터 공개 모집"
“공사하다가 낮에 조선족 인부가 여자 화장실에 숨었다가 범죄라도 저지르면 어떻게 하나요?”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초등학교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예비 학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올린 글이다. 같은 날 북가좌초 2학년 학부모라고 밝힌 이는 “나 ‘님비’ 맞다. 북가좌초에 보내려고 이사 왔는데 하필 개축 대상이라 똥 밟은 기분”이라는 노골적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날 기준 북가좌초 개축 반대 오픈채팅방에는 60여명이 모인 상태다. 북가좌초 전교생은 1305명이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은지 40년이 넘은 학교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두고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 교육청에서 올해 사업 대상을 선정했는데, 서울 등 7곳에서 학부모 사전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잡음이 일어나는 지역은 서울이 유일하다. 올해 개축 대상으로 선정된 북가좌초·역촌초와 리모델링 대상인 중대부중과 모듈러 교실이 설치된 대방초의 일부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 철회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공사기간에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 공사 차량과 철거된 위험물에 노출될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계획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며 “본인 자녀라면 이런 환경에서 공부시키겠냐”고 말했다. 교육청은 “공사차량과 아이들의 등하교 보행동선을 철저히 분리하고, 소음, 분진이 심한 철거공사는 가급적 주말이나 방학 중에 실시하겠다”고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북가좌초 학부모들은 최근 안전 등급이 B등급이라는 점을 내세워 굳이 위험한 공사를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가좌초 교육관은 지난해 육안검사에서는 B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 쪽 설명을 종합하면, 해당 검사는 건물 외관의 균열 등만을 보는 검사였고, 2019년 정밀점검(4년마다 실시)에서는 C등급을 받았다. 북가좌초 교육관 1·2·3관은 1968~1971년 사이 준공돼 지은지 최대 53년이 지났다. 지난해 여름에는 2관 1층 학습준비물실 나무바닥이 내려앉아 긴급 보수에 나섰고 2014년께에는 교육관 외벽 시멘트 덩어리가 분리돼 떨어지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5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직사각형 학교 구조도 문제다. 화장실은 복도 한쪽에만 설치돼 있어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가로질러야 하고, 아이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조차 부족해 시대에 맞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물 안전뿐 아니라 화재 발생 때 정문으로 대형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구조여서 개축을 통해 소방차 진입로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학생 안전 등의 문제로 개축이 시급하다는 서울시교육청의 판단과는 달리,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주장이 여과없이 확산되며 반대 여론몰이가 한창이다. 북가좌초 개축 반대 오픈채팅방을 연달아 개설한 이른바 ‘방장’은 지난달 21일 한 유튜브 영상 링크를 오픈채팅방에 공유했다. 해당 영상에는 한 야당 의원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586운동권들의 빨대꽂기이자 먹거리 창출”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장’은 이날 오전에도 교육부의 공간혁신사업 용역보고서 표절 의혹 기사를 공유하며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가) 불법된 것으로 학교 사업하는 것 아니냐고 민원을 넣겠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공간혁신사업은 내부 리모델링 사업으로 학교 증·개축 사업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와는 사업 대상 자체가 다르다. ‘방장’은 여러 차례 스스로를 “타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지역주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개축에 찬성하는 학부모들은 반대 학부모가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하기 힘들고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가좌초 1학년·4학년 학부모 ㄱ씨는 “학교 개축 문제를 왜 정치와 결부시키는지 이해도 안 되고 화가 난다”며 “나도 1학년 학부모라 공사 환경을 감내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 개축하지 않는다면 53년된 건물을 언제 개축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1학년·3학년 학부모 ㄴ씨도 “앞서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불편을 감수해준 덕분에 2019년 급식실이 새로 지어져 지금은 우리 아이가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 역시 상황 파악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북가좌초 학부모라며 전화를 하거나 민원을 넣고 있는데 재학생 학부모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반대 학부모들의 연합 오픈채팅방에서는 서로 민원 ‘품앗이’를 하고 있다.
일부 세력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불필요하게 정치적 쟁점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의 오락가락 결정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교육청은 앞서 “학교 안전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가 지난달 15일 9곳의 개축을 철회하고 나머지 개축 대상 학교도 학부모 투표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추가로 철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학부모 ㄱ씨는 “북가좌초처럼 개축이 꼭 필요한 학교조차 교육청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불필요한 갈등에 휘말리게 됐는데 그 갈등을 또다시 학교에서 알아서 봉합하라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북가좌초는 조만간 학교 차원에서 대면 설명회를 열고 학부모 찬반 의견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내년도 사업 대상 선정부터는 학부모 의견 수렴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증·개축 희망 학교를 공개 모집해 심사를 거쳐 사업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말라리아 백신 첫 승인…해마다 수십만명 살릴 길 열렸다
- ‘계란 한판=3900원’ 헐값 시대는 끝났다
- [단독] 정치하는엄마들…‘그알’ 등 고발, “학대 아동 신상 공개는 위법”
-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이제 변해야 한다
- ‘역술인 수행원’ 놓고 윤석열-유승민, 삿대질에 말다툼까지 벌여
- 군 부실 급식, 저가 경쟁이 답? ‘학교 급식’처럼 할 순 없나
- “고발장 써 줄테니 대검에 접수하라”…공수처, 김웅-조성은 통화 복구
- 어젯밤 몇 마리의 ‘가을 모기’와 사투를 벌였던가
- 자치경찰 100일…그들은 누구를 향해 경례하나
- 조성은, 김웅과 통화파일 복구에 “놀라운 일…포렌식은 대단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