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초이 통해 본 리더의 품격, 이러니 '스우파'에 열광할 수밖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나만 이 순간들이 소중한가? 좀 되게 섭섭했어요. 진짜 도와 달라고도 말했어요. 두 번이나." Mnet 오디션 <스트릿 우먼 파이터> 메가크루 미션에서 원트의 리더 효진초이는 당시 자기 맘과 같지 않은 멤버들 때문에 힘들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토로했다. 리더로서 전면에서 모든 걸 끌고 가고 있었지만, 팀원들 중 일부는 그의 마음 같이 따라주지 않았다. 모아나 홀로 효진초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지만 엠마는 번번이 안무 실수를 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보통 자신이 방송에 비춰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이런 경우에서조차 할 말을 다하기는 어려울 게다. 그것이 자칫 팀원들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왜곡될 수 있어서다. 특히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유독 비틀린 경우가 많다. 조금만 제 목소리를 내면 "나댄다"는 말까지 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 중 여성들은 특히 조심하는 모습이 잦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효진초이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욕을 먹더라도(아니 욕먹는 것도 개의치 않는 소신과 열정이었다) 할 이야기는 다 꺼내 놓았다. "이게 자신이 있었는데 개인으로서 하는 것과 팀끼리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너무 다른 상황이고.. 심지어 이 친구들이랑 저랑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생님과 제자라서 제가 '야 하라고! 다시! 야! 하라고! 야! 똑바로 안해?' 이렇게 끌고 갈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보니까 미쳐버리겠는 거예요 정말. 그걸 제가 티를 낼 순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당당하게 효진초이가 그렇게 솔직한 자기 목소리를 낼 때, 이 리더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그저 감정적으로 격분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미션에 대한 자신의 남다른 열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습 과정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팀원들이 다 모여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효진초이는 있는 그대로 그 심정을 토로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지 그 얘기를 듣던 엠마는 효진초이의 옷자락을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결국 효진초이는 팀원들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메가크루 미션에서 자신의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다행히 조회수와 좋아요 점수로 최종 5위를 기록했지만 최하위팀이 된 라치카와 탈락배틀팀으로 지목되었을 때 선선이 이를 받아들였다. 팬들의 투표로 최종 5위를 하긴 했지만 효진초이는 자신의 팀이 다른 팀들과 비교해 더 절실하게 미션을 수행했다 여기지 않았다.
탈락배틀에 나가는 마음을 효진초이는 이렇게 전했다. "저희가 춤을 시작했을 때 너무 재밌고 즐겁고 그런 마음으로 준비했잖아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춤을 얼마나 사랑하고 진심인지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는 게 그게 라치카한테도 예의고 우리 모두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웃으며 팀원들을 보듬는 마음을 담아 전한 말이지만, 거기에는 탈락배틀을 그가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춤에 대한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것. 효진초이는 원트가 탈락배틀에서 탈락하더라도 그걸 끄집어내 후회 없는 마무리를 하고팠던 건 아니었을까.
효진초이의 마음처럼 라치카와 원트의 탈락배틀은 박빙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최종 7번째 대결까지 가는 드라마를 썼다. 탈락배틀 6번째 댄서로 출전한 효진초이는 배틀 도중 무릎이 빠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춤을 춰 결국 이겨 3:3 동점을 만들었다. 문제는 맨 마지막 대결주자로 원트가 내세운 댄서가 이채연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이라는 사실 때문에 배틀 상대방으로 계속 지목되어 끝없이 패배를 안겼던 이채연이 마지막에 세운 건 그의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거기까지 가기 전에 배틀을 끝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효진초이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채연에게 할 수 있겠냐 물었고, 이채연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결국 최종 대결에서 이채연은 라치카의 에이치원을 만나 멋진 대결을 펼쳤지만 패배했고 이로써 원트의 최종 탈락이 결정됐다. 하지만 효진초이는 이채연이 아이돌이 아닌 댄서로서 포텐을 터트리는 배틀 댄스를 할 때 기꺼이 감탄하며 박수를 쳐줬다.
효진초이도 그렇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는 지금껏 방송을 통해 잘 그려지지 않았던 여성상들이 등장한다.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는 대놓고 자신이 팀원들을 보듬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드러낸 바 있다. 대신 강하게 질책하고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결과를 냈다. 이런 모습은 방송에서는 '빌런'처럼 그려질 가능성이 높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승부에 대한 강한 근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결국 확실한 능력으로 결과를 내는 모습은 그저 '착하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리더상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메가크루 미션에서 1등을 차지한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는 이 미션을 시작하기 전 팀원들에게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후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을 따라달라고 대놓고 주문한다.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고 허니제이가 안무 동작 내내 센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자, 팀원들도 불만을 표시하지만 그 역시 이를 통해 결과를 낸다. 물론 그도 자신이 잘못 선택한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드러내지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결과로서 입증시킨 것이다.
막강한 실력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들이지만, 다소 논란거리가 될 수 있을 법한 선택들과 말들도 방송에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특히 그간 방송에서 억압되고 비틀어진 시선으로 소비되곤 했던 여성들이고, 게다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뒤에 서서 중심을 빛내주던 댄서들이라는 점은 이 카타르시스를 더욱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다.
물론 매번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댄스 실력과 열정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대한 진짜 열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부딪치고 승패에 승복하고 싸웠던 상대방을 리스펙하는 그 과정에서 방송이 억압해온 여성상이 깨지는 소리가 속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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