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큐멘터리] 바이러스 막아내는 세포의 '슈퍼파워'를 찾아서
바이러스는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다. 숙주세포에 빌붙지 않고서는 자손을 낳을 수도 없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목표는 하나다. 숙주세포에 잘 침투해서 가능한 많은 숙주세포를 감염시키고, 자손을 많이 증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주세포는 바이러스에 당하기만 하고 있을까.
유주연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세포면역유전체학 연구실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체내에 침입했을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체 방어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유 교수는 “바이러스 같은 외부물질이 세포질 안에서 인지되는 방식과 이때 나타나는 신호전달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등 세포 내 소기관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할 때 세포가 어떻게 방어하는지 밝혀내는 것은 치료제나 백신 개발의 첫 단계로 여겨진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을 유발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가 자주 나타나는 RNA 바이러스는 백신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유 교수는 “인체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방어 기작을 작동시킨다”며 “세포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통해 이런 물질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실은 그간 대사증후군 관련 질병 예방·치료용 물질, C형 간염 바이러스(HCV) 감염질환 예방·치료 물질 등을 찾아내 특허를 등록했다. 2016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RNA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감염질환 예방·치료물질 특허도 출원했다.
유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세포가 만들어내는 방어 단백질을 발굴하고, 이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기전을 찾는 기초 연구가 연구실의 주된 관심사”라며 “이를 통해 발굴한 여러 단백질 중 항바이러스 효능이 좋은 후보 물질은 치료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실은 최근 세포에서 일어나는 액체 상태 내 상 분리 현상(LLPS·Liquid-Liquid Phase Separation)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LLPS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자연스럽게 뭉쳤다가 흩어지는 물리적 현상을 말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타난다. 세포생물학 분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Membrane-less organelles에 주목하고 있었으나,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최근 들어 LLPS가 그 이유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LLPS는 활발하게 연구된 기간이 10년이 채 안 된 신생 분야다. 그런데도 최근 전 세계 세포생물학계는 LLPS가 세포생물학에 대변혁을 일으킬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LLPS에 세포의 작동 기작을 설명할 열쇠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세포 내에서 LLPS가 관찰되며, 바이러스의 감염을 조절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백질도 LLPS의 성질을 보인다”며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했을 때 세포 활동을 순간적으로 바꿔 방어 기작을 작동시키는 비밀이 LLPS에 담겨 있고, 이는 곧 치료제나 백신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포스텍 세포면역유전체학 연구실 보러가기
※대학 연구실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엿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연구부터 실제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하는 기술 개발까지 다양한 모험과 도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연구실마다 교수와 연구원,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연구자 한 명 한 명은 모두 하나하나의 학문입니다. 동아사이언스는 210개에 이르는 연구실을 보유한 포스텍과 함께 누구나 쉽게 연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2분 분량의 연구실 다큐멘터리, 랩큐멘터리를 매주 수요일 소개합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랩큐멘터리]다양한 자극에 변신하는 궁극의 반도체 소재를 꿈꾸다
- [랩큐멘터리]난치병 원인 '단백질 수명' 결정하는 신호를 탐색한다
- [랩큐멘터리]드론기술이 낳은 폐해, 발전된 기술로 막는다
- [랩큐멘터리]물고기 수은 중독 원인 찾는 환경과학수사
- [랩큐멘터리]철강재료 특성 결정하는 미세조직의 세계 밝힌다
- [랩큐멘터리] 최적화로 최고의 컴퓨팅 성능 찾는다
- [랩큐멘터리]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 음악 작곡해 환자 치료한다
- [랩큐멘터리]가장 완벽한 화합물 공장, 세포로 새 물질 찾는다
- [랩큐멘터리]계산으로 소재의 미래를 열어나간다
- [랩큐멘터리]'1000조분의 1초' 순간을 포착하는 극초고속 레이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