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탈시설화 미명 장애인 궁지 내몰아"..장애계, 탈시설 권리 위한 수요 미사 개최
[경향신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이하 사회복지위)가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입장문을 6일 발표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 지역사회 지원 체계 부족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중증발달장애인·최중증장애인의 돌봄·보호 책임을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가하는 획일적·강제적인 정책’이라는 게 요지다.
장애계는 지난 8월2일 나온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이 탈시설이 아니라 거주시설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천주교 사회복지위에 “탈시설 권리를 부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장애계는 이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 보장을 기원하는 탈시설 수요 미사’에 들어갔다.
사회복지위는 이날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장애인 탈시설화’ 이전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방안’부터 제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지역 내 특수학교, 주간보호시설, 장애인 자립홈 설치 등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님비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나 구체적 대응 방안 없이 ‘장애인 탈시설화’라는 미명 아래 상시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과 가족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사회복지위는 이어 “정부는 장애인의 장애 특성, 생애주기 등에 따른 선택권 보장과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수립하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사회복지위는 유럽엔 그룹홈, 마을 단위의 공동체, 30인 공동 생활 시설·그 이상의 대형 시설, 장애인 요양 센터, 최중증 집중 치료 센터에 이르기까지 장애 특성 및 건강 지수에 따라 가장 적합한 생활 형태를 장애인 본인과 부모·가족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위는 “중증발달장애인 중 도전적 행동 정도가 심하여 부모가 통제할 수 없거나, 부모의 건강 악화, 사망 등으로 장애인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 등 장애인 거주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며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은 이러한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없애고 오로지 온전한 자립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했다.
또 사회복지위는 “정부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새로운 ‘탈시설 로드맵’을 구축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시설 밖에 존재하는 90%의 발달장애인 가운데에서 최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봐 줄 시설을 찾지 못해 정신병원에 보내야만 하는 부모와 자녀 돌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가정의 아픔에 대해,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눈앞에 있는 불도 끄지 못하면서 그나마 발달장애인의 10%가 머무는 시설을 없애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가 공인한 복지기관은 2020년 말 기준 총 1286개소 중 장애인복지기관은 345개소(약 27%)다. 아동청소년복지 286개소, 노인복지 267개소, 지역복지 97개소, 여성복지 71개소, 노숙인복지 49개소, 한센병환우복지 16개, 의료복지 26개소 등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2일 “장애인의 주거결정권 보장·지역사회 생활 권리를 우선 고려해 탈시설 장애인이 독립생활 할 수 있도록 물리적 거주공간과 복지서비스를 결합해 지원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거주시설 신규개소 금지·거주인의 자립생활 촉진을 위한 거주시설 변환 지원 방안도 내놓았다. ‘거주시설 변환지원’을 두고 장애계와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탈시설은 거주시설 개편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비판을 냈다. 장 의원은 8월3일 “거주시설을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이라고 부른다 해서 시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하는 정책이지 시설서비스를 재편하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다른 입장에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비판했다. 지난 8월24일 사회복지위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시설 폐쇄는 곧 주거 선택권 침해 행위’ 같은 주장이 나왔다.
<장애학의 도전> 저자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인 김도현씨는 사회복지위의 기자회견을 두고 “입장문도 ‘지역사회에 충분한 지원 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어려움이 발생함을 인정하고 있다. 탈시설 운동이 바로 지역 사회에 제대로 된 지원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해 수용하는 시설이라는 존재 자체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장치다. ‘저들은 저렇게 우리와 같이 살 수 없다. 무능하니 시설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계속 만들어내는 게 시설”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 보장’이란 사회복지위의 말을 두고 “다른 선택지와 대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억압적인 시설의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는 이날 “정부는 ‘유엔장애인 권리 협약’이 천명하고 있는 인간 존엄성의 정신과 가치를 올바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실천하기를 권고한다”고 했다. 김씨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2017)’는 탈시설 권리를 명확하게 규정한다”고 말했다.
유엔장애인 권리 협약의 시행령 격인 이 일반논평은 “역사적으로 장애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개인의 선택과 통제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많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지원 제도는 이용할 수 없거나 특정 거주 조건에 묶여 있고, 지역사회 인프라는 보편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자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의 개발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된다. 이는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로 이어졌다”고 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제정연대, 탈시설장애인당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 보장을 기원하는 탈시설 수요 미사’를 연다. 이들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8월24일 열린 사회복지위 주최 토론회를 두고 “장애인 거주시설 전달체계의 존립을 위하여, 최중증·발달장애인을 ‘탈시설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의 권리를 부정하고, 그들의 자립적 삶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시설 입소에 동의하는 장애인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봉쇄당한 이들이며, 이는 ‘강제된 동의’”라고 했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앞에서 미사를 개최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제정연대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과 1만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발의 뒤 이 법안을 논의한 적이 없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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