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피의자 진술 번복 또 미궁 빠지나
경찰 "금융거래 추적·유의미한 주변인 진술 확보..처벌 최선"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인 '이모(당시 45세) 변호사 피살사건'의 피의자가 사건 발생 22년 만에 법정에 선다.
제주지법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6일 오후 2시에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55) 씨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공판 준비 기일은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의견을 듣고 증거 채택 등 입증 계획을 정하는 절차다.
김씨는 1999년 11월 5일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승용차에서 흉기에 찔린 채 숨져있던 이모(당시 45세) 변호사 살해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김씨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와 해당 증거들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다.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조직폭력 두목인 백모 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았고, 동갑내기 손모 씨에게 교사해 실제로 범행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당초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손씨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했다는 것이 김씨의 진술이다.
경찰은 이 진술 등을 토대로 이 변호사 피살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씨는 막상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에서는 '이 사건에 개입한 적이 없다', '손씨의 단독 범행이다' 등 진술을 계속 번복하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문제는 김씨 진술이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에서 공소 사실을 뒷받침할 직접 증거도 없다는 점이다.
현재 이 변호사 양복 외에 직접 증거가 발견될 만한 물품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김씨가 '이 변호사를 왜 죽였는지' 구체적인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오리무중이다.
현재까지 김씨에게 범행을 지시한 배후 또는 윗선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공범 손씨는 2014년 8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다만 김씨가 자신의 주장대로 당시 조폭 두목인 백씨의 범행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범행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백씨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상태였다. 백씨도 현재 사망한 상태다.
아울러 전 제주도지사와 도내 대형 나이트클럽 운영자 배후설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김씨는 현재 이에 대해 함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살인 범행을 공모했는지 뿐 아니라 '실제 손씨가 이 변호사를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도 입증이 필요하다.
제주지검은 앞서 지난달 14일 이 변호사 살인 범행을 공모한 혐의(살인 등)로 김씨를 구속기소 했다.
당초 경찰은 김씨에 대해 살인 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범과의 관계, 범행 방법 등에 비춰 사건 당시 김씨가 사실상 공범과 공모해 범행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 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공모공동정범이란 2명 이상이 범죄를 공모한 뒤 그 공모자 중 일부만 실행에 나아간 경우 실행을 담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동으로 범죄 책임이 있다는 법리다.
현재 손씨가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는 공소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로는 김씨의 진술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와 공범인 손씨, 주변 인물의 금융거래내용 추적을 비롯해 피의자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한 상태"라며 "또 전국 곳곳에서 김씨 주변인들을 만나 의미 있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2년 전 사건으로 입증이 쉽지 않은 점이 많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혀 피의자 범행에 상응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지역 조직폭력배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인 김씨는 1999년 8∼9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동갑내기 손모 씨와 이 변호사를 미행하며 동선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가해 방법을 상의하는 등 범행을 공모했다.
손씨는 1999년 11월 5일 오전 3시 15분에서 6시 20분 사이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서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과 복부를 3차례 찔러 피해자를 살해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증거물 보관실에 이 변호사가 사망했을 당시 입고 있던 양복 등을 발견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DNA) 검사를 여러 차례 의뢰했지만, 이 변호사 외에 다른 DNA는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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