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초월·무한소통..'디지털 지구' 무대엔 국경이 없다 [가상세계 확장하는 문화예술]

2021. 10. 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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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현실 물리적 제약이 촉발
비대면 전시·공연으로 이동 활발
대중음악계, 메타버스 빠른 행보
뮤비 의상·아이템 굿즈 판매 연결
수익 창출 새 비즈니스 모델 부상
교육 플랫폼 메타버스도 대형시장
경계 허무는 소통 콘텐츠 무한확장
클래식·전시·대중음악 등 지금 문화예술계엔 메타버스(Metaverse)가 성큼 다가왔다. ‘먼 미래’가 아닌 ‘손에 잡히는 미래’로 도약해, 가시적인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보이스(VOICE):7개의 기호들’ 전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연한 분홍빛으로 꾸며진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곱 개의 부등호로 표시된 방들이 관객을 맞는다. 일곱 명의 예술가들은 각각의 방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야기한다. ‘=’ 표시가 된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방은 푸른 바다를 옮겨놓았다. 가만히 서 있는 배엔 기타 한 대가 놓였다. 김태원은 자신의 예술체험을 이야기하며 부활의 음악 여정을 ‘항해’로 비유했다. EBS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기획해 선보이고 있는 국내 최초의 메타버스 전시 ‘보이스 : 7개의 기호들’. 최원석 EBS 공간디자인부 부장은 “가상공간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을 주기 위해 각각의 전시는 예술교육자들이 자신의 예술교육의 체험을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이미지화했다”고 말했다.

모든 제약이 사라진 ‘디지털 지구’가 열렸다. 자신과 꼭닮은 아바타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 가득했던 현실을 벗어나 가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블랙핑크 굿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치고 네이버 제페토에 마련된 블랙핑크 하우스를 방문하고,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포트나이트)을 즐긴다. 제주도에 위치한 포도뮤지엄(네이버 제페토)도 내 방 침대에 누워 관람할 수 있다.

클래식·전시·대중음악 등 지금 문화예술계엔 메타버스(Metaverse)가 성큼 다가왔다. ‘먼 미래’가 아닌 ‘손에 잡히는 미래’로 도약해, 가시적인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태원클라쓰’(JTBC) OST ‘시작’을 불러 인기를 얻은 가수 가호는 ‘메타버스형 온라인공연’을 진행하며 팬들과 만났다.[인넥스트트렌드 제공]

▶ 팬데믹이 불러온 메타버스...시공 초월·소통 강점=문화계가 메타버스를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팬데믹으로 인한 ‘물리적 제약’ 때문이었다. 최원석 EBS 공간디자인부 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교육 관련 워크숍 및 콘텐츠를 대면하고 감상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관람문화인 비대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 오픈 당시 일주일 만에 4000여명이 방문, 메타버스 전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메타버스와 문화가 접목했을 때의 장점은 두 가지다. 시공의 한계를 넘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포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마포 M 클래식 축제’는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 ‘M 클래식’ 채널을 열고 가상공간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클래식 축제가 메타버스 연주회를 시도한 것은 힉엣눙크!(Hic et Nunc!) 페스티벌 이후 두 번째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축제인 만큼 더 많은 관객들이 자유롭고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춘 도전을 시도해봤다”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대면 공연의 한계가 있는 때에 가상공간을 통해 축제의 개막은 감염병의 위험 없이 관객을 흡수할 수 있게 됐다.

‘보이스’ 전이 메타버스에서 열리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보이스’ 전은 웹(WEB) XR 기반의 전시로 아바타를 이용해 전시장에 입장하면, 가상현실 안에서 채팅으로 소통하며 관람할 수 있다. 최원석 부장은 “문화예술교육기반의 전시 특성상 일방적인 비대면 전시로 진행하는 것보다 관람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며 “메타버스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가 필요했다”며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메타버스는 ‘한류 콘텐츠’와 만났을 때 특히 시너지가 높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연이 활발해진 대중음악계는 빠르게 메타버스로 이동 중이다. 방탄소년단은 물론 많은 K팝 가수들이 메타버스에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하고, 팬미팅이나 공연을 열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감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난 가상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태원클라쓰’(JTBC) OST ‘시작’을 불러 인기를 얻은 가수 가호는 ‘메타버스형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소속사인 고기호 인넥스트트렌드 이사는 “단순 온라인 공연에선 관객과의 소통이 부족하다. 반면 메타버스에선 아바타로 입장해 야광봉을 흔들고 채팅을 하면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어 온라인 공연에서의 아쉬움을 보완해준다”고 말했다.

차세대 한류 콘텐츠이 웹툰도 메타버스 전시로 구현, 전 세계 관람객과 수월하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락킨코리아는 최근 한국 순정만화계 거장인 원수연, 강경옥, 나예리와 중견, 신예 작가 12명의 웹툰 메타버스 전시를 마쳤다. 이화신 락킨코리아 대표는 “팬데믹과 비대면으로 인한 제약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의 전시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페토에서 공개된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 3D 아바타 안무영상[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아이템으로 수익 창출...새 비즈니스 모델=시공간을 초월한 메타버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도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맞물려 메타버스 상에서 소비자를 확보하고 새로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메타버스가 만날 땐 다양한 수익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포트나이트는 현재 3억 5000만여명이 가입한 공룡 플랫폼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지난해 포트나이트에서 연 3일간의 공연은 무려 2000만 달러(22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전년도 오프라인 공연에서 거둔 수익은 18억원에 불과했다.

대형 공연이 아니라도 메타버스에서의 공연, 팬미팅 등은 굿즈 판매 등으로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고기호 이사는 “공연 관람 전 관객들이 응원봉 등 굿즈를 아이템의 형태로 사거나, 가수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각종 의상 등의 아이템으로 아바타를 꾸미는 것으로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제페토’엔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월드)이나 아이템을 만드는 이용자가 70만여명에 달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템은 200만개, 누적 아이템 판매량도 2500만개를 넘어섰다. 제페토에는 구찌, MLB, 나이키 등 글로벌 패션 기업들이 정식 론칭돼있기도 하며, 블랙핑크와 잇지(ITZY) 등 K팝 걸그룹의 의상 아이템도 판매 중이다. 제페토를 찾는 MZ세대들은 가상현실임에도 기꺼이 원하는 아이템을 구매, 자신의 아바타에 적용하며 메타버스를 만끽하고 있다.

AI 걸그룹 이터니티의 멤버 다인은 지난달 게더타운에서 솔로 데뷔 쇼케이스를 열었다.[펄스나인 제공]

▶ 문화 전반에 변화...교육·AI 아이돌·공연 청신호=메타버스는 장르를 망라해 문화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선 메타버스의 영역 확장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새로운 소통방식이자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이라는 속성상 메타버스와 문화예술계와의 접목은 필연적이라는 입장이 많다.

메타버스의 영역 확장은 각 분야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원석 부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착될 비대면 환경 확대와 기술의 발전으로 메타버스를 시작으로 보다 현실감 있고 심지어 공감각이 가능한 콘텐츠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교육 콘텐츠는 메타버스 적용이 기대되는 분야다. 최 부장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에 이르는 청소년 세대들은 메타버스에 최적화된 인류”라며 “교육 플랫폼으로의 메타버스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자, 가장 좋은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EBS에선 현재 학교 교육의 한 축으로 교육콘텐츠 전시와 가상공간에서의 미래교실 등을 기획 중이다.

K팝 가상 아이돌, 인플루언서와 만난 메타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엔터테인먼트다. AI 걸그룹 이터니티를 제작한 펄스나인 관계자는 “K팝과 AI 아이돌의 시너지는 긍정적이다”라며 “가상 아이돌의 활동은 시공간, 형식의 제약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한 소통으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콘텐츠 확장 효과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공연예술계도 메타버스와의 접목을 통해 타깃 확장 등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송제용 대표는 “새로운 형식의 만남은 필수적이다. 모든 문화계가 적극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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