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부패완판' 세상이 됐다
이현종 논설위원
대형 비리 터졌는데 수사 방치
경찰, 수상한 자금 6개월 뭉개
검찰 수사 의지도 능력도 의문
재판거래 의혹 침묵하는 大法
검찰·사법개혁 민낯 드러나
巨惡과 부패 판치는 세상 우려
지난 3월 여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경제·사회 제반 분야에서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 얘기를 하고 얼마 후 결국 윤 총장은 사퇴의 길을 택했다. ‘검찰 개혁이냐, 부패 완판이냐’ 논쟁은 이번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계기로 윤 전 총장 예언이 100% 맞은 것으로 결론 나고 있다.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부터 박범계 장관까지 문재인 정권은 검찰 수사권 무력화를 ‘검찰 개혁’으로 포장해 밀어붙였다. 전국 지검·지청의 특별수사부를 폐지하고 서울중앙지검 등 4곳에만 남겼다. 부패·경제 범죄 등 6대 범죄를 제외한 수사권을 경찰에 넘겼고, 판·검사 등에 대한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맡도록 했다. 이것도 모자라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검수완박’은 윤 총장이 사퇴하고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하자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 요직에 특정 지역, 친정권 인사 배치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검찰권의 남용, 특히 직접 수사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여당이 추진한 중대범죄수사청에 무게를 실었고, 김 총장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맞장구쳤다.
이렇게 검찰도 개혁되고 경찰은 수사권이 생기고, 공수처도 탄생했지만 ‘단군 이래 최대 개발 비리’라는 대장동 사태가 터졌는데 제대로 믿고 수사를 맡길 기관이 없다. 예전에는 이런 대형 비리가 생기면 대검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서 어느 정도 국민 의혹을 풀어주었는데 이젠 믿을 사정기관이 하나도 없어지면서 ‘부패완판’ 세상이 됐고, 거악(巨惡)들은 살판이 났다. 뇌물 단위도 수백·수천억 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조상 대대로 가지고 있던 땅을 싸게 팔고, 대출받아 내 집을 마련했던 시민들의 돈이 고스란히 몇몇 거악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대장동 사건은 지난 4월 시행사인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통보했을 때 제대로 살펴봤더라면 진작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말단 직원 한 명에게 맡겨두고 6개월이나 뭉개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이제야 수사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화천대유 측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에 찾아와 거액의 현금을 찾아가는 바람에 은행 직원이 짜증을 냈을 정도라는데, 경찰은 뭘 하고 있었는지 황당하다. 이런 경찰에 수사권을 줘봐야 뭘 할 수 있겠는가.
친정권 인사들로 수사 라인을 완벽하게 구성한 검찰은 기자들이 의혹을 파헤치는 동안 수수방관하다가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달 27일 검찰에 녹취록과 사진 등을 제출하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증거 제출이 없었다면 아직도 뭉개고 있을 것이다. 지난 3일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압수수색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유 씨가 휴대전화를 밖으로 던졌다고 하는데 찾지도 못한다. 유 씨가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지인에게 맡겼다고 진술했는데도 확보하지 못했다. 억지로 수사하는 티가 역력하다.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땐 아직 제대로 수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박 장관이 국회에 나와 “강한 의심이 든다”며 결론이 난 것처럼 말하고, 김 총장은 검사 10명을 투입하더니 이번엔 침묵한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선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를 의뢰하고, 전국법관회의는 호들갑을 떨더니, 이번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엔 입을 다물었다. 이재명 경기지사 무죄 판결에 앞장선 권 전 대법관이 판결 전후로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를 8번이나 만나고, 퇴임 직후 이 회사 고문으로 가 거액을 받았다. 국가 사정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검찰 개혁, 사법 개혁으로 부패가 판치고 거악이 살판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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