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AI에 신원 들통.. CIA 해외 첩보망 붕괴위기

■ CIA, 전 세계 지부에 위험 경고

中·러 등지서 활동하는 정보원

첨단기술에 잇따라 신원 발각

일부는 붙잡혀 처형 당하기도

적국 상대 정보전 능력 퇴보 지적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자타공인 세계 최고 정보기관인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현지 정보원 수십 명의 신원이 드러나 붙잡히고 처형당하는 등 해외 첩보망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인공지능(AI)·생체인식 기술 발전, 통신망 노출 등이 CIA 정보원들의 정체가 발각된 주된 원인으로 꼽힌 가운데, 지난 20년간 테러 대응 등에 치중하면서 CIA의 정보전 능력이 과거보다 퇴보했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5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CIA 고위 관리들은 지난주 전 세계 CIA 지부에 최근 수년간 해외 각국에서 미국을 위한 정보원 역할을 했던 수십 명의 신원이 드러났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이례적인 극비 전문을 보냈다. 전문에는 CIA 방첩임무센터가 지난 몇 년간 해외 현지 정보원 관련 사건 수십 건을 조사했으며 신원이 드러난 정보원 일부는 체포되거나 처형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일부 정보원은 미 정보당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거나 역정보를 흘리는 이중첩자 역할을 맡았다는 충격적 내용도 포함됐다. CIA가 해외 정보원 적발 사례로 든 국가는 중국,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등이었다. 또 전문에는 최근 몇 년간 CIA를 괴롭힌 고질적 문제점이 나열됐는데, 형편없는 전통 첩보 기술과 정보원에 대한 과도한 신뢰, 외국 정보기관에 대한 과소평가, 너무 빠르게 정보원을 모집하려다 방첩을 소홀히 한 점 등이 거론됐다.

특히 생체인식, 안면인식, AI·해킹 등 관련 기술 발전이 최근 CIA 해외 정보원들의 신원이 발각되는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전직 CIA 관계자는 NYT에 “중국·러시아 등이 안면인식 기술 등을 활용해 자국에서 활동하는 CIA 정보원들의 움직임을 추적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CIA 정보원이 접촉하는 사람들까지 실시간으로 드러나 정체가 탄로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 CIA 기밀통신망이 뚫리는 바람에 정보원이 발각된 사례도 있었다. 중국과 이란에서 CIA 통신망이 뚫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두 사례 모두 신원이 드러난 현지 정보원이 처형됐다. CIA 정보원이 적국에 포섭되거나 이중첩자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CIA에서 요원 조직 관리를 맡았던 중국계 미국인 제리 춘 싱 리는 2018년 중국 정부에 기밀정보를 넘긴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았다. 또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7명의 희생자를 낸 CIA 기지 폭탄테러의 경우 CIA가 포섭한 요르단 출신 의사가 자폭테러를 감행했다.

일부 전직 CIA 직원들은 수십 년 동안 주로 테러 위협에 초점을 맞추면서 적국을 상대로 하는 CIA의 정보전 능력이 퇴보했다고 꼬집었다. 테러조직 내에 정보원을 만드는 것과 외국 정부를 감시하는 정보원을 양성·훈련·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NYT는 “이 기구(CIA)는 지난 20년간 테러 위협 등에 많은 관심을 쏟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러시아에 대한 더 많은 통찰력을 요구함에 따라 적대적 강대국들에 대한 정보수집의 개선이 CIA의 핵심 의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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