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전하는 '주거환경'이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여러분들은 ‘벼락 거지’, ‘패닉 바잉’, ‘영끌 대출’, ‘로또 청약’이라는 단어들에 익숙하신가요? 지난 수년간 언론 및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용어들입니다. 이 용어들을 관통하는 단어는 ‘부동산’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증가 및 투자 수요로 인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간절함이 빚어낸 대한민국의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구글 트렌드에서 ‘부동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봅니다. 지난 5년간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심도 변화 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토록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주거환경과 한국인의 정신건강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공간이 주는 중요성
사람의 성격을 바꾸려면 직업, 혹은 사는 곳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업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사는 곳이나 공간을 바꾸면 영향을 받아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이 변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나 성당을 떠올려보세요. 아주 높은 천장이 주는 무거운 공기의 분위기, 천장의 깊은 울림, 스테인드 글라스의 화사함 등은 마음과 행동을 경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공간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공간에 살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
2020년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 유형의 51.1%가 아파트를 차지하고 그 뒤를 31.0%로 단독주택, 9.4%가 다세대주택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아파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파트 사랑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도시 및 수도권 중심의 인구 쏠림 가속화가 되면서 좁은 땅덩이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다 보니 인구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아파트는 꾸준히 들어설 것 같습니다.
◇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다면?
어린 시절부터 세계 각국을 경험한 사람과 마을 한곳에서 지내온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성의 차이가 커집니다. 줄곧 아파트라는 성냥갑과 같은 공간에서 거주를 한다면 어떨까요? 생각의 틀도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머무를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한정된 높이와 구조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전후좌우 볼 수 있지만 천장의 전고가 높지 않기 때문에 위, 아래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게 됩니다.
2007년에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Minnesota university)의 조안 마이어스 레비(Joan Meyers-Levy) 교수팀은 ‘천장의 높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The influence of ceiling height)’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천장의 높이가 30cm씩 높아질 때마다 추상력과 창의력이 배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보통의 아파트는 최소한의 건축설계법의 기준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높은 천장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생긴 성냥갑 같은 구조의 아파트지만 마치 훈장을 달아주듯 우리 아파트는 뭔가 다르다고 차별화를 시킵니다. 브랜드를 홍보하며 과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가 그 사람 개인의 특성보다 더 눈에 띄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보다 어디에 있는 무슨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는지 더 회자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도덕성이나 영혼의 모습을 보기 보다 물질적인 것을 우선시한다면 결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 단독 주택에 거주하게 된다면?
단독 주택이 아파트에 비하여 편리성이나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리도 힘들고 무엇보다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독 주택은 집의 내, 외관과 소재, 방의 구조, 천장의 높이, 계단의 위치 등 집 주인 고유의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는 거주 환경입니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아파트 보다 계절 및 날씨의 변화를 더 가까이에서 느끼게 됩니다.
적절한 환경의 변화와 자극이 지속되어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자연의 변화에 조금 더 깊숙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줘서 정서적으로도 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단독 주택은 아파트 복도와는 달리 밖을 나가려면 골목 또는 다른 주택들과 인접한 길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따라서 익명성의 대명사인 아파트보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열려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의 보급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저는 단독 주택이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며 보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을 내세워 단독 주택을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효율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다양성이 사라지고 소통이 부족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갈수록 남성과 여성의 대립, 극단적인 정치적 관점의 차이, 청년과 어른들의 입장 차이가 커지며 사회가 경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이와 더불어 사회의 기틀이 되는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을 통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우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윤석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전문가 대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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