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갇혔다 [장르물 전성시대]

2021. 10. 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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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음모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허황된 공상 정도로 치부해야 마땅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특한 발상에 혹할 만큼 충분히 ‘그럴듯한 가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음모론이 그럴듯한 망상에 그친 것도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MK울트라 프로젝트’로, 1950년대 미국 CIA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인간을 세뇌하고 조종하기 위해 정부기관이 피험자에게 마약을 투여하거나 고문하며 극비리에 실험을 벌였다는 이 음모론은 오랫동안 도시 전설처럼 회자되다가 마침내 관련 문서가 공개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1995년 클린턴 행정부는 과거 정부를 대신해 공식 사과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사안의 특성상 일각에서는 여전히 음모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혹은 또 다른 진짜 목적을 숨기고 있다거나.

<인스티튜트 1>(스티븐 킹 지음)의 표지 / 황금가지


이제는 음모론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역사’는 그간 창작물에서도 여러 번 다뤄졌다. 최근에는 그 실체를 초능력 실험으로 구체화하는 추세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비롯해 영화 〈마녀〉, 〈아메리칸 울트라〉 등은 모두 MK울트라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이를 일종의 초능력자 양성 계획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하나인 스티븐 킹 역시 이 일련의 유행을 자신의 주특기로 수렴했다. 그의 2019년작 〈인스티튜트〉는 염력이나 텔레파시에 재능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납치한 후 가혹한 실험을 통해 초능력을 극대화하는 모종의 시설에 관한 이야기다. 기시감 가득한 소재지만 쌓아올리는 방식만큼은 무척 새롭다.

열두 살 루크는 MIT와 에머슨대학에 동시 입학 허가를 받은 영재 중의 영재다. 그에겐 염력이 있지만 사실 천재적인 지능에 비하면 미미한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괴한들이 루크를 납치해 ‘시설’에 감금한다. 루크는 이곳에서 또래 아이들을 만나고, 시설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초능력을 계발한답시고 시시때때로 물고문 등을 가한다. 아이들의 텔레파시 능력을 개화시키기 위해 온갖 악질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탓에 이곳에는 늘 크고 작은 폭력이 만연해 있다. 웬만한 어른보다 똑똑한 루크는 시설의 맹점을 이용하고 잡역부의 환심을 사 탈출을 도모한다.

공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스티븐 킹은 실은 굉장히 다양한 작품을 집필한 작가다. 대부분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 삼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완연한 하드보일드 소설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막기 위한 시간여행을 그린 〈11/22/63〉 등으로 보다 넓은 진폭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가장 근원에 자리한 것은 역시나 유년기의 공포다. 〈스탠 바이 미〉, 〈그것〉에서 보여준 감각 그대로 〈인스티튜트〉 역시 루크와 또래 소년·소녀들의 절망과 공포 그리고 저항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명의 인물 각자의 욕망과 개성을 그대로 대치시키며 여기 온갖 서브컬처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재주는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대단원에서는 시설의 목적을 인류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음모론으로 풀어낸 후 이를 철저히 논파하는데, 과연 루크의 지난한 탈출기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짜릿하다. 초능력이나 운명론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간은 나아갈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가장 유명한 음모론에 마침내 상쾌한 마침표를 찍는 듯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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