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첫 영화 촬영..'우주로 출장가는 시대' 예고
영화 촬영 장소에 우주 공간이 추가됐다. 125년 영화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제우주정거장을 무대로 한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이는 우주가 특별한 이들을 위한 탐사, 관광 무대에서 이제 일반인들의 경제 활동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큐사인’이다.
러시아 연방우주국(로스코스모스)은 5일 오후 1시55분(현지시각, 한국시각 오후 5시55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우주기지에서 배우 율리야 페레실드와 감독 클림 시펜코 , 그리고 안내인 역할을 할 전문 우주비행사를 태운 소유스 우주선 MS-19을 소유스 로켓에 실어 국제우주정거장을 향해 발사했다.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느낌…현실로 믿기지 않아”
영화제작진 일행을 태운 우주선은 약 3시간30분 후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했다. 소유스 우주선이 기존의 소요시간 8~22시간보다 훨씬 빨리 우주정거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2018년 러시아가 개발한 ‘2궤도 랑데부’ 방식 덕분이다. 지구를 두바퀴 돈 뒤 도킹하는 이 방식은 우주정거장이 발사대 위를 지나갈 때 로켓을 발사한다.
도킹 2시간 후 해치가 열리자 우주정거장에서 임무 수행 중인 제65차 원정대 우주비행사 7명이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페레실드는 환영 행사에서 “이 모든 것은 꿈이며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느낌”이라며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됐다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긴급수술 위해 우주로 가는 외과의사 이야기
이들은 앞으로 12일 동안 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약 40분 분량의 영화 장면들을 촬영한 뒤, 현재 우주정거장에 도킹돼 있는 소유스 MS-18 우주선을 타고 17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돌아온다. 미 항공우주국 대변인 롭 나비어스는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에 접근하면서부터 우주선과 우주정거장 양쪽 모두에서 휴대용 카메라를 이용한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하는 영화는 러시아 국영TV(채널원러시아)의 첫 우주제작 영화 ‘비조프’(도전이라는 뜻)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 영화는 “우주쓰레기에 부딪혀 중상을 입었지만 지구로 즉시 돌아갈 수 없는 우주비행사를 수술하기 위해 긴급히 우주정거장에 파견되는 한 여성 외과의사에 관한 이야기”다. 우주정거장의 러시아 우주비행사들도 출연진으로 나선다.
주연을 맡은 페레실드는 러시아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세바스토폴 상륙작전’(2015) 등에 출연한 명예 예술가다. 시펜코 감독의 최신 작품은 ‘스페이스7’(2017, 원제 ‘살류트7’)으로, 1985년 소련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다룬 우주 재난 영화다.
페레실드는 지원자 3천명 중 1차로 선발된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 검진, 심리 검사 등을 통해 최종 선발됐다. 연방우주국은 선발 조건으로 러시아 국적에 나이 25~40세, 몸무게 50~70kg, 3분30초 이내 1km 달리기, 20분 이내 자유형 800미터 수영, 3m 스프링 보드 다이빙 등을 내세웠다.
두 사람은 지난 4개월간 가가린우주비행사훈련소에서 원심분리기 체험, 무중력 비행 훈련, 낙하산 훈련 등 강도 높은 우주비행 훈련을 받아 왔다.
수십년만에 미국 제치고 ‘최초’ 타이틀 거머쥔 러시아
이번 우주여행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처음으로 장편 영화를 우주에서 촬영한다는 점이다.
미-소 냉전 시절 미국과 ‘최초 우주비행’ 경쟁을 벌였던 러시아는 이번 우주여행을 통해 오랜만에 ‘최초’ 타이틀을 추가했다. 최초의 동물 우주비행(1957),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1961),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1963) 타이틀을 가져갔던 러시아가 이번에 추가한 호칭은 ‘최초의 우주 영화 촬영’이다.
러시아 국영TV는 이를 대내외에 적극 홍보하기 위해 이번 촬영의 모든 제작과정을 촬영해 방송한다.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우리는 우주의 개척자였다”며 “이번 임무가 러시아의 우주 능력을 보여주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객도 우주비행사도 아닌 사람들의 우주여행
그러나 이번 우주 영화 촬영에는 ‘최초’라는 이벤트를 뛰어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채널원러시아는 웹사이트를 통해 “영화 제작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우주 비행이 전문비행사뿐 아니라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도 확대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우주여행자의 증가를 넘어 우주여행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미트리 로고진 연방우주국장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들, 무중력 아래서 목표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주비행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며 “이번 우주 임무는 관광객도 우주비행사도 아닌 사람들이 우주로 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로고진 국장은 “이번 여행을 위한 4개월 훈련에는 자신이 애초 원하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 우주로 갈 필요가 생긴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 포함돼 있다”며 “우리가 이 기술을 연마해 전 세계에 보여준다면, 1000번을 넘어 1001번째 비상상황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미지의 영역 개척으로 시작된 우주비행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비행사들의 과학 실험과 탐사, 여행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 최상층 부호들의 모험 관광을 넘어 일반적인 비즈니스 영역으로 편입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출장가듯, 앞으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출장가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2019년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민간에 우주정거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사는 당시 관광객만이 아니라 우주 벤처기업들에도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해 두차례 정도는 우주정거장을 제품 시험이나 민간 연구, 영화촬영 등을 위한 장소로 쓸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두 나라의 우주당국이 이렇게 방침을 전환한 배경에는 만성적인 우주정거장 운영비 부족이라는 현실이 있다.
미 톰 크루즈도 우주 촬영 계획…시기는 미정
나사의 개방 방침에 따라 미국의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더그 라이먼 감독도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지원 아래 우주정거장에서 영화 촬영을 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짐 브라이든스타인 당시 미국항공우주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톰 크루즈와 우주정거장에서 영화를 함께 작업하게 돼 흥분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아메리칸 메이드’를 함께 작업했던 더그 라이만이 감독과 각본을 함께 맡는다. 촬영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5월 미국 영화배우 톰 크루즈의 우주정거장 촬영 계획을 접한 직후 우주 영화 기획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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