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페이퍼스' 거명된 러시아 석유재벌, 英보수당과 유착 정황
2조원대 영국-프랑스 인프라 사업 수주한 뒤 보수당에 기부
전 세계 전·현직 정상들과 고위 공직자, 연예인 등이 조세 회피처를 통해 거액의 재산을 은닉하고 탈세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명 ‘판도라 페이퍼스(문건)’ 사태가 세계 각국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4일(현지 시각) BBC방송,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판도라 페이퍼스에서 횡령·탈세 혐의가 거론된 러시아 출신 석유 재벌 빅토르 페도토브가 소유한 회사가 영국 보수당에 거액을 기부해온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페도토브가 소유한 영국 회사 에이퀸드는 현재 영국과 프랑스 간 해저 전력을 연결하는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12억4000만 파운드(약 2조 65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해당 사업은 현재 정부 승인을 기다리는 단계다. 그런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친구이자 에이퀸드의 공동 소유주인 알렉산더 테메르코가 보수당에 110만 파운드(약 18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페도토브의 재산 축적 과정이 불법적이었다는 것이다. BBC는 “페도토브가 러시아 국영 송유관 업체인 트랜스네프트와의 수억 달러 계약으로 이득을 봤던 브니스트(VNIIST) 라는 회사의 비밀 소유주임을 폭로하는 판도라 페이퍼스 문건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08년 감사보고서에서 트랜스네프트는 부패로 막대한 손실을 보았는데, 이로 인해 이익을 본 계약업체 중 하나가 브니스트였다. 이 회사는 계약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도 보수를 챙겼고, 이 때문에 트랜스네프트는 두 번의 계약에서 약 1억4300만 달러(약 1662억 50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문건에서 페도토브와 다른 두 명의 공동 소유주는 해외의 조세피난처를 통해 트랜스네프트와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을 탈세하는 구조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은 페도토브가 이런 방식으로 취한 이득이 최소 9800만 달러(약 1164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낸 수익의 일부를 영국 햄프셔주에 700만 파운드(약 114억원) 짜리 저택 등을 사들이는 데 쓴 것으로 나타났다. BBC는 “페도토브가 영국에서 자금을 댄 것은 단지 부동산만이 아니다”며 “그는 보수당에도 돈을 댔다”고 했다.
페도토브와 에이퀸드의 연관성은 그간 개인 보안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영국 회사법 면제를 통해 숨겨져 왔다. 또 페도토브의 사업체들은 에이퀸드의 해저 전력 사업이 시작된 이후 34명의 하원의원과 그들의 지역 정당에 70만 파운드를 더 기부했으며, 전·현직 장관들이 이 회사 임원으로 재직했던 사실도 밝혀졌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보수당 대변인은 “기부는 적절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졌고, 과거 노동당 정부에서 제정한 법과 요구 사항을 준수한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또 “기금 조달은 민주적 절차의 합법적인 부분이고, 정부 정책은 당이 받는 기부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에이퀸드 측 변호사 역시 “기부는 합법적이고 적절하게 이뤄졌으며, 어떠한 특별 대우의 대가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며 “(기부금이) 트랜스네프트로부터 횡령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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