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칼럼]기업도 국제정치의 체크리스트를 준비하라
국제질서 읽는 능력 확보가 관건
정세 변화 맞춤형 대응전략 짜고
사건 쫓지말고 구조·의미 읽어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는 오커스(Aukus)협정에 서명했다. 이어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중국의 무역 관행을 또다시 비판하면서 2단계 미중 무역 전쟁을 예고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 총공세의 일환이다. 중국도 10월 1일 국경절을 맞아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무력시위를 했다. 미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흔들고 있는 데 대한 반발이다. 나아가 미국에 대해 불만을 지닌 유럽연합과의 전략적 대화에 나서면서 미국과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현실파들의 요구도 있다. 미국이 동맹과 민주주의 국가들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힘에 부치고, 중국도 미국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국력과 매력 모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의 대국’으로 간주한 것도 외교적 수사만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낡은 것은 죽었으나 새로운 것은 태동하지 않는 궐위(interregnum)의 시대에 불확실성이 뉴노멀이 되면서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강대국은 국가를 통하지 않게 기업 활동에 개입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시장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삼성전자에 반도체 영업 내용을 밝히라고 겁박하고, 중국이 한국과 호주 사례에서 경험하듯이 안보와 경제를 연계해 압박하는 행동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시장과 다자·규칙·민주주의는 국가 이익 앞에서 쉽게 흔들리고, 기업도 국제 질서에 대한 후각을 키우지 않으면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첫째, 미국 리스크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외교의 목표를 ‘중산층을 위한 봉사’에 둔 것은 ‘나부터 살겠다’는 선언이다. 효용 극대화를 위해 설계한 글로벌 가치사슬 대신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기업의 눈치 보기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둘째, 중국 리스크다. 중국은 사회주의 정체성, 당의 지배, 공동 부유를 주장하면서 국가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위배하는 국내외 기업에 대해서는 명시적 보복과 묵시적 압박 수단을 쓸 것이다.
셋째, 포스트 반도체 전쟁이다. 메타버스가 오프라인 시장을 대체하고, 6G와 양자 컴퓨팅 기술이 가져올 ‘날아다니는 자동차 시대’의 규칙과 규범을 정하는 것도 결국 국제정치의 치열한 힘겨루기에서 결정될 것이다.
넷째, 국제정치에 깊숙하게 들어온 환경과 노동 분야다. 사실 미국과 한국 모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전가의 보도로 삼아 기업에 책임을 전가하고 미래 세대에 폭탄을 돌릴 소지가 다분하다.
전환의 시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국제 질서를 읽는 능력에 좌우될 수도 있다. 사실 외교도 선(善)을 내세우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전략적 위선의 결과라는 점에서 기업 활동과 닮았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행동과 국제정치를 연계하면서 사안별·시기별로 순응·적응·대응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첫째, 백년 기업을 향한 CEO와 똑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을 두텁게 확보하고 정보 공유의 절차를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둘째, 국제 질서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맞춤형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점검해야 한다. 셋째, 진영에 편입된 심리적 편안함을 극복하고 최대한 균형감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넷째, 국제 질서는 넓게 파야 깊이 팔 수 있다. 사건을 쫓지 말고 국면과 구조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융합과 복합의 사고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국제 질서의 대립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혁신을 결심하고 성공한 CEO는 없다. 오히려 해결하고자 하는 구체적 미래 과제가 있었고 시대정신을 창의적으로 접목한 결과가 혁신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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