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이대론 안 된다] 한자·일본식 표현 수두룩..쉬운 우리말 안 보인다
청와대를 비롯해 중앙 부처, 산하기관 등 공공기관은 국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이다.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 이곳의 보도자료 등 공문서에 한자·일본식 표기는 물론 어려운 단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뉴스24는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공문서 실태를 짚어본다. 중앙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발표하는 문서 등 구체적 사례를 통해 분석해 본다. 얼마나 ‘복지부동(伏地不動,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인지 현실을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000 장관은 금일, 동 사안에 대해 유관기관장과 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향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조속히 해법을 찾도록 지시했다.”
공공기관에서 내놓는 보도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짧은 문장이다. 이 한 문장 안에 고쳐 써야 할 단어가 수두룩하다. 위 문장을 국립국어원이 내놓은 안내서를 참고해 수정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된다.
“000 장관은 오늘 이번 사안에 대해 관계기관장과 대책회의를 연 뒤 앞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빨리 해법을 찾도록 지시했다.”
◆공공언어 쉽게 쓰면 안 되나?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중앙 부처는 물론, 산하기관 등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공문서 등에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는 물론 한자, 일본식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 매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받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어 더 큰 문제다. 일일이 지적하기조차 무색할 정도이다.
국립국어원은 2014년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공공언어 바로 쓰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공공기관에 배포한 바 있다. 2019년 개정판을 만들어 여러 부처에 제공했음에도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는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전달됐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는 공공기관 보도자료 등 공문서에 대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사용 ▲지나치게 긴 문장 삼가기 ▲조사 어미 등 생략할 때 어법 고려 ▲어색한 피동 표현 자제 ▲한자식(~적인, ~하에 등) 표현 삼가기 ▲일본식 표현(~왕의, ~에서의 등) 자제 등을 주문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 안내서를 만들어 관련 기관에 보냈는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라며 “아직도 공문서에는 어려운 말이 많고 문장도 어색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은 2019년 ‘공공언어 바로 쓰기’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실제 배포되고 있는 여러 공공기관의 보도자료 중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 등을 ‘콕 집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해당 안내서를 보면 일일이 열거조차 어려울 정도로 보도자료가 엉망진창이다.
공공언어는 좁은 의미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언어가 포함된다. 공공언어는 우리나라 국민과 직접 소통되는 언어인 만큼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 보도자료 실태, 어느 정도?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여러 중앙 부처를 비롯해 산하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보도자료는 마치 닮은 것처럼 일본, 한자식 표현이 수두룩하다. 굳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될 좋은 한글이 있음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SLBM 잠수함 최초 발사시험 등 참관’이란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는 ‘완벽히 하여’ ‘노고를 위로하고’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는 ‘완벽히 하여→허술함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하여’ 등으로 고쳐 쓸 것을 주문했다.
또한 ‘노고를 위로하고’에서 ‘치하하다’라는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권위적 표현이기 때문에 보도자료에서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는 지적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9월 30일 ‘김부겸 국무총리, 제133회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 주재’라는 보도자료는 내놓았다. 이 자료에 “반려동물 등록률과 실외사육 견 중성화율을 대폭 높이겠습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문장 중 ‘제고하겠습니다’는 ‘높이겠습니다’로 표현하도록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는 권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일 ‘홍남기 부총리, 5대 그룹 전문경영인과 간담회 개최’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는 ‘금년’ ‘인식 하에’ ‘향후’ 등의 단어와 문장이 넘쳐난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는 ‘금년→올해’, ‘인식 하에→인식에 따라’, ‘향후→앞으로’ 등으로 고쳐 쓸 것을 주문했다.
교육부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30일 발표한 ‘첨단분야 인재양성 촉진 및 대학 혁신 지원을 위한 정원제도 개선’에서도 고쳐 써야 할 단어나 같은 단어의 반복 문장이 확인된다. ‘용이하게→쉽게’ ‘일정 기간 동안→일정 기간’ ‘향후에는→앞으로는’ 등으로 바꿔써야 한다.
대검찰청은 지난 8월 26일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민중심벌금형 업무 개선’이란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자료에는 ‘요건 하에’ ‘벌금 미납 시’ ‘신청 시’ ‘사유 발생 시’ 등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요건 하에→요건 아래에’로 고쳐 써야 하고 한자식 표현인 ‘~시→할 때’로 고쳐 써야 한다.
◆관련 지침, 2014년부터 만들어졌는데 안 바뀐다
이뿐만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일정 기간 비교 통계수치를 많이 발표하는 부처의 경우 ‘~대비’를 마치 표준어처럼 자주 사용하고 있다. ‘~대비’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작년 동기대비’ ‘0000년 대비’ 등은 모두 ‘~보다’로 고쳐 써야 한다고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는 강조했다. ‘작년 동기대비→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대표 단어들을 꼽아 보면 ▲조속히(빨리) ▲금번(이번) ▲금년(올해) ▲금일(오늘) ▲익일(다음 날/이튿날) ▲소관·관할(담당) ▲기 통보한(이미 통보한) ▲지체없이(곧바로) ▲동 사안은(이번 사안은) ▲해소하며(없애며) ▲감안하여(고려하여) ▲~를 득하지 않고(~를 받지 않고) ▲수여하고자(주고자) ▲사료됨(생각함) ▲향후(앞으로) ▲~에 위치한(~에 있는, ~에 자리 잡은) ▲약 30여명(약 30명 또는 30여 명) ▲전년 대비(지난해보다) ▲제고하기(높이기) ▲기일을 엄수해(날짜를 지켜) ▲기여하는(이바지하는) ▲유관 기관(관계 기관) ▲면밀히(자세히) ▲타 학교(다른 학교) ▲게재되다(실리다) ▲필히(반드시) ▲상기(위의) ▲연루되어(관련되어) 등이다. ( ) 단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에서 고쳐 써야 한다고 추천하는 단어이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를 총괄 집필한 변선화 국립국어원 연구원은 “(안내서가 있음에도 왜 바뀌지 않는지에 대해) 공무원 조직의 관례 등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앙 부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여러 부서에서 작성하는 보도자료를 대변인실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하면서 고친다고는 하는데 아직 여의치 않은 면이 많다”며 “오래된 관례에다 관련 교육 부족 등으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앞으로 ‘공공언어 바로 쓰기’, 부처 평가한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데는 ‘보도자료 등 공문서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는 ‘쉽고 바른 공공언어 쓰기’ 항목을 평가해 오기는 했다. 다만 이 평가항목은 ‘소통성 평가’의 아래 지표로 형식적으로 다뤘다. 소통성 평가항목에 ‘뭉그적’ 묻어가는 하나의 지표에 불과했다. 중앙 부처 등에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셈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문화부는 국어기본법 개정을 통해 ‘공문서 등에 대한 평가’를 독립 항목으로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문화부 국어정책과 관계자는 “국어기본법 개정안에 ‘공문서 등에 대한 평가’ 항목에 대한 근거가 마련됐다”며 “소통성 평가항목의 하위 지표에 머물렀던 ‘쉽고 바른 공공언어 쓰기’ 평가는 앞으로 독립 항목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시행령이 만들어지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12월에 시행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시행령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평가대상은 보도자료와 업무계획보고서 등이다. 평가결과는 홈페이지 등에 공개되기 때문에 공공기관 담당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쉽고 바른 공공언어 쓰기’ 평가항목이 독립적으로 구축되면 부처 평가에 수치로 집계돼 공개된다. 이번을 계기로 ‘공공언어 바로 쓰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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