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vs 메르켈 리더십 차이점 [김세형 칼럼]

김세형 2021. 10.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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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꼭 대국(大國)의 지도자라 하여 그만큼 뛰어나란 보장은 없다.

2차대전 발발 직전 히틀러와 협상했다가 속은 네빌 체임벌린이나 후임 윈스턴 처칠은 똑같은 영국 총리였지만 전자는 낙제점, 후자는 천재로 역사는 평가한다.

그러니까 독일 총리가 한국의 대통령보다 더 능력 있을 거란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메르켈의 재임 기간은 2005년 11월~2021년으로 16년 동안인데 이는 독일 역사에서 비스마르크(20년), 헬무트 콜(Helmut Kohl)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한다.

동독 출신 첫 여성 총리이고 현직 총리가 출마하지 않고 퇴임한 첫 사례였다는 점에서 최초가 여럿인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후임 총리를 뽑기 위한 총선을 한 9월 26일 메르켈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80%까지 치솟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EPA연합
경제 성적-여론 통합 동시에 달성

메르켈이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지지율을 누리는 비결은 뭘까.

첫째, 항산에 항심이라고 경제 성적이 좋았다. 독일 언론은 10년간(2010~2020년) 지속된경제성장, 고용률, 실업률 감소 등을 높이 사서 '황금의 10년'을 그녀의 치적으로 자주 보도한다(한델스 블라트). 뒤에 다시 기술하겠지만 부동산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안정적이었다.

역시 국민의 삶과 직결된 경제 성적표가 가장 중요한 치적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 규모는 메르켈이 취임한 2005년 2조7953억달러에서 2020년 말 4조달러로 43% 증가했다. 중국은 2년 만에 그 정도 증가했겠지만 같은 기간 일본은 4조5588억달러→4조9720억달러, 영국 2조1988억달러→2조8290억달러로 제자리 뜀 한 데 비하면 독일이 잘한 편이다. 1인당 GDP로도 독일이 18.3% 늘었는데 프랑스 6.0%, 이탈리아 -8.6% 등으로 더 못했다.

둘째, 매트 포트러프 영국 코벤트리대학 교수는 "메르켈이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 정책 토론장으로 바꿔놨다"고 높이 평가한다.

메르켈 재임 시 4번의 총선 후 정부를 구성하면서 기민당+기사당 대연정을 3번이나 달성해 냈는데 이는 한국으로 치면 여야 간 협치(協治)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하다.

왜 독일 정치판이 평화롭고 조용하며 엄마(Mutti)리더십으로 평가됐는지를 웅변해 주는 대목이다.

한국은 국회만 열리면 말꼬리 잡고 조국의 내로남불 등을 촉발시킨 여당과 야당 간 싸움이 지난 55개월 내내 나라를 두 동강 냈다. 여기에서 메르켈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가 클 것이다.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만 날뛴 부분 역시 한국과 독일은 정반대다.

셋째, 정부 여당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와 '국정 공개' 여부,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독일에선 정치적인 모든 일은 언론에 공개하고 이것이 정치시스템을 깨끗이 하는 장치라고 여긴다.

메르켈은 10월 3일 독일 통일의 날 연설에서 “오늘날 우리는 언론이라는 가치 있는 자산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독일에서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환경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치에 필수 요소인데 시민단체가 자신들 이익을 추구하느라 극구 공동의 가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일은 없다.

메르켈의 연설은 마치 한국에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언론탄압법을 줄기차게 기도하고 사법부를 장악하고, 좌파 시민단체는 무조건 도와주는 문재인 국정운영 스타일과는 메르켈은 180도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도자의 능력 범위가 아닌 정치적 가치관 차이임도 알 것이다. 어떤 방식이 더 자유민주주의에 합당한가.

메르켈의 3대 실패 분야

메르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견제하고, 금융위기 시 유로화 가치 안정 등 유럽연합을 끌고 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메르켈의 16년간 통치에도 F학점에 가까운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독일 총리 역사에서 옥의 티로 남을 것이며 메르켈의 후임 총리 선정 과정이 어수선하고 연정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메르켈의 과오가 기여한 측면도 있다.

메르켈은 '유럽의 병자'에서 하르츠 개혁을 소화하며 '유럽의 번영'이란 명예를 얻었지만 전 세계를 호령하는 빅테크(Big Tech) 선수를 키우는 데 실패했다.

메르켈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시 삼성전자(반도체, 모바일)를 무척 부러워하며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도 없다.

연금개혁도 성공하지 못했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놀라 '탈원전'을 시작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실패 경로를 걸은 분야다.

한국은 반도체, 전기배터리 등 몇몇 분야가 독일을 오히려 앞지른 것은 문 대통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간의 기업가정신이 빚어낸 성과지만 이는 독일, 일본, 영국을 능가할 정도다.

연금개혁은 보건복지부가 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푸시하지 않아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뛰어난 위기 대처, 부동산 안정

메르켈 리더십은 평화, 화합, 정책토론 등 온화함을 치중하다 보니 국론 분열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없는 나라가 됐다.

당내 보수 컬러가 강한 정치인들을 중도진영으로 이끌어내 좌파녹색당과 잘 어울리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배출하는 등 본인의 후광을 바탕으로 세계적 여성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공로도 크다.

아마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메르켈 내각 소속이었다면 WTO 사무총장에서 고배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리더십은 노조, 공수처, 기업정책, 소득주도성장 등에서 가장 갈등을 조장했다.

독일도 부동산 가격이 좀 뛰긴 했지만 2차대전 이후 일본과 더불어 공급량을 가장 많이 늘린 국가여서 작년 1월만 해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의 아파트값이 1980년대보다 낮다고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The horrible housing blunder). 문 정부의 부동산은 메르켈의 성적과 정반대였음을 이코노미스트가 증거를 내세워줬다.

메르켈의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빛나는 공적은 위기 대처 능력이 좋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장 경제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고 정부 개입은 최소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경북 포항 영일만에서 열린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이충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좋은 대조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일방주의 때도 굴복하지 않는 뚝심을 보여줘 함부로 그녀를 대하지 못했다. 2015년 발칸반도 난민 위기 때 국경을 열어 100만명 난민을 받아들인 조치는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독일의 경제발전 창업 공로자의 44%가 이민 출신임을 감안하면 메르켈의 선택은 용감하고 인도주의적이다. 겸손과 실리주의, 실용적 리더로 평가한다.

민주주의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념윤리가 아닌 책임윤리다(막스 베버).

2020년 8월 여름날 저녁 조국을 법무장관에 임명한 후 국론이 쪼개져 광화문과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정반대 데모를 했을 때 "개인의 의사 표현은 바람직하다"는 분열 조장이 문재인식 리더십이었다. 부동산 공급을 않고 세금 금융으로 때려잡다가 실패해 가격이 폭등하고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가운데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게 유일한 답변이다.

메르켈이라면 그렇게 상황을 끌고 가지도 않았겠지만 실제 그런 결과와 맞닥뜨리면 뭐라고 말하고 무슨 조치했을까. 메르켈의 대응은 분명 달랐을 것인데 둘은 체임벌린과 처칠의 차이만큼이었을 수도 있다.

두 지도자의 지지율은 80%와 40%인데 문 대통령의 경우 K방역 허수(虛數)를 걷어내면 20%대로 본다. 대략 메르켈의 4분의 1토막이란 얘기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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